후릉
- 왕릉명
- 후릉
- 능주명
- 제2대 정종·정안왕후
- 왕릉위치
- 경기도 판문군 령정리(舊 경기도 개풍군 흥교면 흥교리)
- 조성연대
- 1412년 왕후릉, 1420년 왕릉
- 왕릉형태
- 쌍릉
능의 조성
후릉은 제2대 정종과 정안왕후 김씨의 능으로, 1412년(태종 12) 6월 정안왕후가 훙거한 후 처음으로 조영되었으며, 7년 뒤인 1419년(세종원년) 정종이 승하하자 왕비릉 옆에 동일한 형식의 능실을 마련함으로써 쌍릉이 되었다. 왕릉은 시기적으로 보아 제릉, 건원릉, 후릉의 뒤를 이어 헌릉을 조영한 박자청이 역사를 감독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1408년(태종 8) 승하한 태조 건원릉의 조영방법을 승계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544년(중종 39) 정자각이 불타 재건 여부를 논의하였다. 1666년(현종 7) 후릉의 사대석, 상석 등에 일부 잡석이 사용되었고, 망주석, 석마, 석양의 크기가 작고 조각이 분명치 않은 등의 문제로 인해 후릉의 수리가 논의되었으나, 후릉의 상석만 고치기로 하고 수개소를 해체하였다. 그러나 『후릉수개도감의궤』에 의하면 1667년 수개소를 수개도감으로 변경한 뒤 상석, 난간석, 병풍석, 죽석, 망주석이 개보수되었으며, 봉분 주위의 석물이 재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능주 소개
정종(定宗, 1357~1419)은 조선의 제2대 왕으로, 이름은 경(曔)이고, 초명은 방과(芳果)이다. 자는 광원(光遠)이다. 태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이다. 조선왕조가 개창되자 1392년(태조 1) 영안군(永安君)에 봉해졌다. 1398년 8월 정안군 방원(靖安君芳遠)이 주도한 제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하면서 세자가 되고, 1개월 뒤 태조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1399년(정종 1) 3월 개경으로 천도하였으며, 1400년 2월 제2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정안군을 세자로 책봉하였고, 그해 11월 정안군에게 양위하였다. 시호는 처음에는 온인공용순효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었으나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으로 개시되었다. 묘호(廟號)는 정종(定宗)이다. 정안왕후(定安王后, 1355~1412)는 조선 제2대 정종의 비이다. 경주김씨(慶州金氏)로, 판예빈시사 증문하좌시중월성부원군(判禮賓寺事贈門下左侍中月城府院君) 천서(天瑞)의 딸이다. 1398년(태조 7) 8월 정안군(靖安君: 태종) 등에 의한 정도전(鄭道傳)일파의 제거 및 이를 계기로 한 세자 의안대군(宜安大君)의 폐출로 영안군(永安君)이 세자가 되면서 세자비가 되었고, 같은 해 9월에 덕빈(德嬪)에 봉해졌다가 정종이 즉위하면서 덕비(德妃)에 진봉(進封)되었다. 1400년(태종 즉위년) 정종이 태종에게 전위하고 상왕이 되자 순덕왕대비(順德王大妃)의 존호를 가상(加上)받았다. 인자하고 후덕하였으며, 정종에게 선위하고 정양할 것을 권하여 정종이 조기에 선위 및 천수를 다하게 한 내조가 있었다.
왕릉탐방
후릉(厚陵) 구조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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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유산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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