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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문화유적 목록

개성 유적목록
유적명 정백동제37호묘
지정사항 미분류 제 호
주 소 평양특별시 정백
유적설명
이 무덤은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마을에서 알려졌다. 두 개의 무덤 구덩이가 남쪽과 
북쪽에 각각 동서로 나란히 놓인 부부 함께 묻기의 나무곽무덤이다. 북쪽곽이 남자
의 것이고 남쪽곽이 여자의 것이다. 나무곽들은 외곽과 내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
자곽의 외곽은 동서 길이 3m, 남북 너비 2.1m, 높이 0.4m, 내곽은 길이 2.3m, 너비 
0.8m, 높이 0.3m이다. 여자곽의 외곽은 동서 길이 3m, 남북 너비 1.2m, 높이 0.65m, 
내곽은 동서 길이 2.1m, 남북 너비 0.8m, 높이 0.57m이다. 내곽들 안에는 각각 작은 
껴묻거리곽(부장품곽)이 있고, 특히 남자곽에는 주검곽 만한 크기의 껴묻거리곽이 덧
붙어 있었다. 무덤 짜임새에서 특징은 부부 함께 묻기 무덤이라는 것과 부부의 곽이 
약간 사이를 두고 따로 만들어졌다는 것, 주검곽에 잇대어 껴묻거리곽이 있는 것 등
이다. 무덤 짜임새의 이러한 특징은 마지막 시기의 나무곽무덤들에서 볼 수 있는 일
반적인 것으로서 이른 시기의 귀틀무덤의 짜임새와 잘 통한다.
무덤에서는 긴 쇠칼, 쇠단검, 짧은 쇠칼, 쇠뇌, 창고달이 있는 창 등의 강철제 무기
류와 활, 화살, 5쌍의 청동제 수레굴대끝을 비롯한 5대분의 수레부속품, 6개의 금동
말관자와 200여 개의 금동말굴레 장식품, 그리고 금판과 보석으로 장식한 띠고리, 칠
기류, 청동거울, 화분형단지와 배부른 단지, 그밖에 여러 가지 치렛거리(장신구) 등 
7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여기서 나온 띠고리는 은판으로 만든 것인데 한 쪽이 조
금 넓어지고 밖으로 약간 곡선을 이루었으며 반대쪽은 두 모서리가 직각이다. 이 띠
고리에는 네 다리를 버티고 서 있는 용맹스러운 범 한 마리를 두드러지게 
새긴 다음 그 겉에 금판을 붙였다. 범의 눈과 그밖의 12개소에는 검푸른 보석을 박
고 가장자리에는 좁쌀 만한 크기의 금싸락들을 촘촘히 박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
러한 종류의 값진 띠고리는 말기의 나무곽무덤인 정백동 92호무덤과 초기 귀틀무덤
들인 석암리 9호무덤을 비롯한 일부 무덤들에서 나온 일이 있다. 이것은 나무곽무덤
과 귀틀무덤 간의 계승관계를 유물로서 증명하는 좋은 실례이다. 특히 같은 시기 이
웃한 다른 나라의 무덤들에서는 아직 이런 종류의 띠고리가 단 한 점도 나온 일이 없
다는 사정을 고려할 때 이 유물은 이 고장의 독특하고 우수한 문화의 한 측면을 보
여 준다. 정백동 37호무덤은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서북지방의 나무곽무덤들 가
운데서 규모가 제일 크고 껴묻거리의 종류와 가지수도 특별히 많고 그 품위도 대단
히 높다. 이러한 점들은 무덤의 주인공이 당시 이 지역 정치세력의 우두머리급에 속
하는 사람이었음을 말해 준다. 무덤에서는 또한 이 무덤의 축조연대를 알 수 있게 하
는 "지절(地節) 4년 2월"(기원전 66년)이라는 기년명이 있는 칠곽도 나왔다. 이것은 
이 유적을 비롯한 나무곽무덤의 축조시기를 밝히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렇
듯 이 유적은 나무곽무덤의 마지막 시기인 기원전 1세기 후반기 평양지방의 문화발
전 정형과 기원전 1세기 말경부터 시작된 귀틀무덤과의 계승관계를 밝힐 수 있게 한
다.
시 대 낙랑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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