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하 초상
- 제작시기
- 1719년(숙종 45)
- 제작자
- 김진여(金振汝)
- 규격
- 전체 203.2×104.3cm, 화면 129.2×91.5cm
- 지정종목
- 보물
- 지정일
- 2024-08-22
- 소장처
- 의림지역사박물관
- 관련사이트
- 권상하 초상-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바로가기
해제
이 초상화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노론계 유학자인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권상하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이다. 그는 이이(李珥, 1536∼1584)와 김장생(金長生, 1548~1631)으로부터 비롯된 송시열(宋時烈, 1607∼1689) 학문의 정통 계승자로 평가되는 학자이다. 1689년에는 기사환국으로 송시열이 사약을 받게 되자 스승의 임종을 지키며 그의 유지를 받았다. 특히 충청도 괴산 화양동(華陽洞)에 만동묘(萬東廟)를 세워 명나라 신종(神宗)과 의종(毅宗)을 제향한 일은 그가 송시열의 유지를 받들어 행한 대표적인 사업의 하나로 꼽힌다. 사후 그는 충주의 누암서원(樓巖書院), 청풍의 황강서원(黃岡書院) 등 10여 곳에 제향되었다. 이 초상화는 권상하 종손가에서 2021년에 보물인 <송시열 초상>과 함께 의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 초상화는 권상하를 제향한 서원인 충청도 제천의 황강서원(黃江書院)에 봉안되어 있었다. 이 초상화의 화면 상단에는 “한수옹의 79세 초상(寒水翁七十九歲眞)”이란 제목이, 화면 우측 하단에는 “기해년(1719년) 4월 일에 화사 김진여가 그리다(己亥四月日, 畫師金振汝摹)”란 제기가 각각 적혀 있다. 한편 『한수재선생연보(寒水齋先生年譜)』에는 김진여(金振汝, 1675~1760)가 권상하의 초상화를 그린 시점이 1719년 3월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김진여는 1719년 3~4월에 이 초상화를 완성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상기의 연보를 검토했을 때 이 시기에 권상하가 상경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보여 이 초상화는 김진여가 권상하의 거소(居所)인 충청도 제천의 한수재를 직접 방문해서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김진여는 평양 출신 화가로 숙종(肅宗, 재위 1674~1720)의 어진 및 박세당(朴世堂, 1629~1703), 박세채(朴世采, 1631~1695) 등 당대 명사들의 초상화를 도맡아 그렸던 화가 조세걸(曺世傑, 1635~?)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그 역시 1713년의 숙종 어진 및 1719년의《기해기사첩(己亥耆社帖)》제작에 참여할 정도로 당대에 초상화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그는 숙종 재위기에 서양화법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해 사용했던 화가였다. 이 초상화에서 권상하는 머리에 복건을 쓰고 상의하상(上衣下裳)으로 추정되는 옷을 입은 채 앉은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복식에 쓰인 필선은 초상화에 일반적으로 쓰였던 굵기가 일정하고 유려한 것이 아닌 도석화(道釋畵)에 주로 사용되었던 거칠고 대담한 필치의 것이다. 김진여는 특히 안면 표현에서 서양화법인 음영법을 농후하게 적용하였다. 그는 얼굴의 바탕을 갈색으로 칠한 뒤 어두워 보이는 부분과 주름 주변을 좀 더 진한 갈색으로 칠하는 방식으로 음영을 표현했다. 특히 왼뺨 부분을 주변보다 짙게 칠해 음영을 드러낸 결과 권상하의 얼굴은 매우 입체적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윤곽선을 쓰지 않고 채색만으로 콧대를 묘사하고 입 주변부를 밝게 칠하여 코와 입의 입체감을 드러내었다. 김진여가 구사한 이러한 표현기법은 이전 시기의 화가들에게서는 확인할 수 없는 매우 진전된 방식의 것이다. 이 초상화에서 권상하의 얼굴은 약간 오른쪽으로 향한 모습이나 몸체는 거의 정면상처럼 그려졌다. 검은 색 연(緣) 부분이 마치 둥글게 말린 것처럼 그려진 것은 이 그림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가 착용한 옷은 상의하상이란 옷으로 추정된다. 무릎 부분은 채색되지 않은 모습인데, 이는 상의하상 중 측면이 뚫려 있는 하상의 형태를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 있다. 상의하상은 송시열이 중시한 야복으로, 그가 사사되기 직전에 권상하에게 언급한 자신의 염습복(殮襲服) 3종 중 하나였다. 한편, 이 초상화에서 권상하가 착용한 옷에는 흰 색의 실선이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 표현이 어떤 의도 하에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글: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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