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계조당 발굴조사’는 「경복궁 2차 복원정비 기본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그 중 2단계인 제왕교육 및 궁중군사권역 복원에 해당되며 동궁의 다른 권역과 함께 복원될 계획이다. 계조당은 근정전의 동편, 자선당의 남편에 위치하며 세종 대에 처음으로 조성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등의 기록에는 계조당의 용도가 세종 대와 고종 연간에 다소 차이가 존재함이 확인된다. 전자의 경우 주로 『조선왕조실록』에 표기되어 있으며, 세자가 실제로 조회를 받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승정원일기』에 기록이 집중되어 있으며, 세자와 관련한 각종 의례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계조당의 구조와 주변 담장·행각의 변화도 엿볼 수 있는데 사료가 대체로 조선 후기에 편중되어 있어 용도와 관련된 변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조사는 광범위한 교란으로 유구의 층위적 선후관계 파악이 불가능한 여건을 고려하여 평면상에서 관찰되는 유구의 중복관계 파악을 위해 조사지역을 전면적으로 노출시키는 방법을 택하였다. 조사결과 확인된 유구는 계조당 본채와 북편 담장지의 일부분으로 기초 부분만 잔존하고 있었다. 본채의 적심은 총 6기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원형으로 크기는 100~120cm 이다. 동측 적심 4기의 적심간의 간격은 210, 300, 210cm이고, 협칸과 접한 퇴칸의 적심간격은 210cm이다. 기단기초는 동측에만 확인되는데 폭은 1m 정도이지만 남편의 경우에는 2.5m 정도로 넓게 조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계조당 본채의 규모는 동서 약 12.9m, 남북 약 7.3m로 추정되었다. 행각의 경우 교란으로 확인이 불가능하였고, 북편 담장의 경우 북서쪽 모서리로부터 17m 정도가 확인되었다. 전체적인 계조당지의 형태는 담장이 표기된 『무진진찬의궤』, 『경복궁배치도』, 『북궐도형』 중에서 적심간의 간격이 7척-10척-7척으로 배치된 『북궐도형』의 기록과 유사한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통해 조선 후기의 계조당이 실제로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지 확인하였다. 향후 이어질 조사들을 통해 조선 전기 동궁의 전모도 확인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