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지 설명 |
○ 건물지
건물지 1은 석조여래좌상 아래 동쪽에 있는데 크기는 11.9×11.4m이며 잔존석축은 10m 정도 남아있다. 3..5단으로 쌓았으며, 높이는 1.2m 정도이다.
건물지 가운데 분묘가 있고, 동편에는 적심석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있는데,지름은 1.2m이다. 건물지 2는 건물지 1에서 30m 정도 떨어진 석불좌상의 남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높은 축대로 자연암반 사이를 연결하여 석축을 만들고있다. 현재 건물지 내부는 신우대로 덮혀있어 정확한 건물지의 파악은 어렵다. 일제강점기 당시 석등지대석이 주변에 있었으나, 당시 없어졌다고 한다. |
불상 설명 |
○ 석조여래좌상(보물)
이 불상은 보물(1980.6.11 지정)로 경주시 배동 산 71번지에 위치한다. 光背와 턱 부분이 파손되었을 뿐 거의 완전한 상태이다.
1923년 조사 당시 불상은 앞쪽으로 엎어져 있었고 불두는 아래쪽에 떨어져 있었으며, 光背는 뒤쪽에 넘어져 있던 것을 그 해 12월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후 지금은 光背가 역시 파손된 채 뒤에 놓여져 있고 불상의 얼굴은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으며, 남쪽의 계곡을 바라보고있다. 섬세하게 조각된 ..髮의 머리 위에 둥근 肉鉅가 나지막하게 솟아 있고, 반쯤 뜬 가늘고 긴 눈은 자비로운 모습이다. 1970년 이전에민간인이 코 아래 부분과 입, 턱 부분을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나, 얼굴이 너무 길어져 상호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남아있는 눈썹과 눈매에는 위엄이 느껴져 단정한 얼굴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사시 불두는 신체와 달리 제작하여 촉을꽂아 결합하였다고 하나, 당시에도 코 아래부분은 결실되어 있었다.
짧은 목에는 三道가 있고,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가슴, 넓은 무릎 등은 안정감 있는 신체를 잘 표현하고 있다. 右肩偏袒의 法衣는 얇고,背面에도 일정한 간격의 계단식 옷주름을 표현하였다. 法衣의 간결한 옷주름은 기본적으로 石窟庵本尊佛과 유사하나, 手印의 표현은 완전하지 못하다. 觸地를 취한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충분히 내려오지 못하였으며, 왼손 역시 腹部앞이 아니라 왼쪽 다리 위에 놓여져 있다.
또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넓게 결가부좌한 자세는 안정감 있으나, 가슴과 두 팔의 양감은 석굴암 본존불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가슴과팔에 걸친 옷주름과 양다리 사이의 부채꼴 옷주름은 石窟庵本尊佛과 같다. 더욱이 대좌 상면의 부채꼴 옷주름은 석굴암 본존불의 정통계보를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좌는 상, 중, 하대로 구성되었으며 중대석은 8각형이다. 상대석의 연잎 안에는 花文이 첨가되어 있고, 밑면에는 8각형의 상대받침이 1단으로 마련되었다. 팔각형의 중대석은 낮은 편으로, 각 면에는 첨정형의 眼象文이 새겨져 있다. 하대석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2단의 8각형 중대 받침을 갖추고 있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마련하고, 寶相華文과 火焰文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크기에 비해 대좌는 낮고, 광배는 크며 신체도 상체에 비해 하체의 양감이 강조되어 안정감을 준다. 또한 신체 표현은 둔감하고 형식적으로 흘러간 반면 대좌나 광배의 세부 표현은 화려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통일신라 후기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이 불상은 9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대좌를 포함한 현재 높이 238㎝.佛身의 높이 137㎝.무릎 너비 105㎝이다. 대좌의 높이는 101㎝이며, 광배를 복원하면 높이는약 2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 석조약사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뒤쪽 암반을 넘어 약 40m 거리에는 절벽 사이에 마련된 좁은 터가 있다. 이곳에는 불상 1구가원위치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1914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현재불상이 있던 곳은 2단으로 쌓은 축대가 부분적으로 남아있고, 내부에는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다. 높이 3.3m의불상을 안치하기에는 내부공간이 다소 협소한 편이다.
불상은 광배, 대좌를 완전히 갖추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머리에는 크고 낮은 육계가 알맞은 조화를 이루며솟아 있고,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원만하나 미소가 사라진 근엄한 표정이다. 얼굴에는 활형으로 예리하게 그어진 눈썹, 가늘면서도 길고 약간 치켜 올라간 두 눈, 적당한 높이의 코, 꼭 다문 입, 부푼 눈두덩 등은 부처의 위엄과 권위를 표현하였다. 양쪽 귀는 길어 어깨에 닿고 짧은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다. 통견의 법의를 입고 오른쪽어깨에서 내려온 옷자락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와 뾰족한삼각형 끝단을 이루고 있다. 왼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촉지인을 취하고, 왼손은 오른발 위에 올려 약함을 쥐고 있어 항마촉지인의 약사여래좌상이다. 광배는 원형에 가까운 거신광으로 2줄의 선을 넣어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였다. 內區에는 화불과 영락을 새겨 장식하였고, 外區는 다소 투박한 화염문을 새겼다. 대좌는 통일신라시대전형적인 3단의 팔각대좌로 상대석에는 仰蓮의 이중연화문이, 하대석에는 복련의 복판연화문이 있다. 다른 불상에 비해 다소 높게 표현된중대석은 각면에 장방형의 안상을 새기고 그 내부는 향로와 천인상으로 장엄하였다.
○ 마애선각여래좌상
보물 제666호인 석조여래좌상을 지나 上禪庵으로 향하는 등산로에서 서쪽 암반을 바라보면 線刻의 磨崖佛이 새겨져 있다. 자세히 보면머리와 어깨 부분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 있으나, 그 이하는 미완성이다. 素髮의 머리에 肉鉅가 솟아 있고, 둥근 얼굴에는 이목구비가뚜렷하다. 짧은 목에는 三道가 분명하고, 넓고 각이 진 어깨는 비록 미완성작이나 당당한 체구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좁은 이마와白毫, 그리고 두 눈썹과 눈 사이를 매우 좁게 표현한 점 등은 삼릉계 제5사지 마애여래좌상의 세부표현과 유사하다. 이러한 세부표현으로보아 불상은 통일신라 말기인 10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현재 높이 약 80㎝.어깨 너비 약 13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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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및 석등 설명 |
○ 삼층석탑
석조여래좌상 앞 계곡 쪽의 암반 위에 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조사 당시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정원에 전시중인 삼층석탑이 삼릉계에서 출토되었다고 하여,318) 이 탑이 삼릉계 제6사지 삼층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탑은 기단부를 자연 바위로 삼은 지암곡 제3사지 삼층석탑, 비파곡 제2사지 삼층석탑과 같은 형식이다. 현재 자연기단으로 추정되는 곳은 2.8 2m 정도 편평하게 되어있다. 2층옥개석과 3층탑신석, 3층옥개석과 노반이 한 돌로 되어 있다.
각형 2단 받침석 위에 바로 1층탑신석이 놓이고, 1.2층탑신석은 양우주가 있는 별석으로 만들었으나, 3층탑신석은 2층옥개석과 한 돌로 만들었다. 또한 1.2층옥개석의 옥개받침은 5단이나, 3층옥개석의 옥개받침은 4단이고, 노반석은 3층옥개석과 한돌로 만들어졌다. 각층 옥개석의 탑신받침은 각형 1단으로 마련되었고, 낙수면은 완만하게 내려온다. 이 석탑은 전체 높이 216㎝.1층옥개석 길이 98㎝.1층 탑신석 높이 53㎝로 소형이며,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3층은 4단으로 되어있는 점과 추녀마루의 곡선 등으로 볼 때 9세기 후반에 제작된 소형탑으로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