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안화리암각화(高靈安和里岩刻畵)
- 시대
- 철기
- 연대
- 철기 초기
- 크기
- 가로 115.0㎝, 세로 90.0㎝
- 소재지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 산1번지
- 지정사항
- 시도기념물
- 연구정보
개관
경북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 안림장터 부근으로 양전동(良田洞) 바위그림에서 상류쪽으로 3㎞정도 거슬러 올라간 안림천변의 구릉 하단 경사면에 있다. 현재 서쪽으로 안림천의 범람원이 유적 바로 앞까지 와서 암면(岩面)의 앞쪽에는 겨우 발디딜 정도의 공간만 있다. 바위그림은 상호 3m가량 떨어진 2개 지점에서 확인되었는데, 이른바 방패모양처럼 생긴 무늬가 연속적으로 새겨 있다. 가장 형태를 잘 갖춘 가운데 그림은 높이, 너비가 35×27㎝이다. 아래쪽 지점에서는 방패무늬가 4개 가로로 배열되어 있는데 가장 오른쪽의 것은 양 측면이 만곡(彎曲)하고 상하 폭이 거의 비슷한 바, 상단의 둘레는 ‘U’자형을 기본 윤곽으로 하였다. 내부는 2줄의 가로줄과 1줄의 세로줄로 구획되고 각 구에는 1개씩 알구멍(性穴)이 있다. ‘U’자형의 윤곽선 상단에는 따로 떨어진 종장방형(從長方形)의 윤곽이 돌려져 얼핏 사람의 머리처럼 보인다. 영주 가흥동(可興洞) 바위그림에 비슷한 예가 있다. 중앙에 있는 2개의 방패무늬는 서로 중복되어 있다. 오른쪽의 작은 암각이 먼저이고 왼쪽의 큰 암각이 나중에 새겨졌다. 위 지점에서는 모두 10개 이상의 방패무늬가 확인되었는데, 역시 내부 상단에 ‘U’자형 혹은 ‘V’자형 무늬가 패어 있고, 위쪽에 깃털모양이 있다. ‘U’자형인 것은 깃털이 있고 ‘V’자형인 것은 깃털이 없다. 이러한 방패무늬는 무복(巫服)에 거울이나 원판이 매달려 있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된다. 시기는 비슷한 무늬를 가진 고령 양전동 바위그림 유적 주변에서 점토띠토기[粘土帶土器]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B.C. 3-1세기경의 초기철기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판독문/해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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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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