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순교비(異次頓殉敎碑)
- 시대
- 통일신라
- 연대
- 817~818년(헌덕왕 9~10)
- 유형
- 비문
- 크기
- 높이 106.0cm, 한 면의 너비 29.0cm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 /각자 /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이차돈순교비는 본래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백률사터에 있었던 것인데,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높이는 104cm이고, 면의 너비는 29cm이다. 백률사석당기(栢律寺石幢記) 또는 이차돈공양비(異次頓供養碑)라고 부르기도 한다. 순교비는 527년(법흥왕(法興王) 14)에 불교의 공인을 위하여 순교한 이차돈을 추모하기 위하여 817년(헌덕왕 9) 또는 818년(헌덕왕 10)에 건립하였으며, 비문을 지은 사람과 글씨를 쓴 사람 모두 알 수 없다. 순교비는 모두 6면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면에는 이차돈이 순교할 때 목에서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에 꽃비가 흩날리는 장면을 음각으로 새겼다. 제2면에서 제6면까지 글자를 새겼는데, 마멸이 심하여 글자의 판독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마멸이 심하지 않을 때 누군가가 글자를 목판에 새겨 인쇄한 법첩(法帖) 2종류를 통하여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비문의 내용은 불교를 널리 전파하려는 법흥왕(法興王)의 의도, 이차돈과 법흥왕의 대화, 불교의 공인을 둘러싼 신하들의 토론, 그리고 이차돈의 죽음 순으로 구성되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이차돈의 순교 관련 기록과 크게 차이가 없다.
판독문/해석문
해석문 | 남동신 | ||
판독문 | 朝鮮金石總覽 | ||
판독문 | 今西龍 | ||
판독문 | 劉喜海 | ||
판독문 | 이기백 | ||
판독문 | 허흥식 | ||
판독문 | 문명대 | ||
판독문 | 中吉功 | ||
판독문 | 남동신 | ||
판독문 | 末松保和 |
참고문헌
단행본 | 『三韓金石錄』 | |
단행본 | 『朝鮮古蹟圖譜』 권4 | |
단행본 | 『東國金石評』 | |
단행본 | 2002 | 『한국고대금석문종합색인』 |
논문 | 2002 | 李逢春, 2002, 「興輪寺와 異次頓의 순교」『新羅文化』20, 東國大 新羅文化硏究所 |
논문 | 2002 | 深津行德, 2002, 「아시아에서의 초기 불교수용의 諸相 -興輪寺創建設과 異次頓 殉敎의 意味-」『新羅文化』20 |
단행본 | 1995 | 國史編纂委員會, 1995, 『韓國古代金石文資料集』Ⅲ, 國史編纂委員會 |
단행본 | 1992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編, 1992,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논문 | 1991 | 南希叔, 1991 「新羅 法興王代 佛敎收容과 그 主導勢力」『韓國史論』 25 |
단행본 | 1987 | 이기백, 1987, 『韓國上代古文書資料集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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