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리암각화(大谷里岩刻畵)
- 시대
- 청동기
- 연대
- 청동기
- 크기
- 미상
- 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401 (황의갑)
- 지정사항
- 시도유형문화유산
- 연구정보
개관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벽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의 그림을 새겨놓은 것을 말하는데, 주로 농사의 풍요와 생산의 의미를 지니는 주술행위의 결과물로 보인다. 대곡리암각화는 봉황대로 불리는 구릉의 정상 부근 암벽에 새긴 것으로 호남지방에서 유일한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이 암각화는 1991년 국사편찬위원회에 근무하는 김광 연구사가 처음으로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진 것이다. 암각화는 두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크기는 1∼2m 내외이며 상하 혹은 좌우 대칭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겼다. 마모가 심하여 자세하지는 않지만,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묘사한 듯하다. 하나는 암벽의 서쪽에서 길이 400㎝, 폭 140㎝의 벽면에 2문, 다른 하나는 길이 250㎝, 폭 190㎝의 벽면에 3문의 기하문이 모두 횡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자는 두 줄의 외곽선으로 검파형(劍把形)[방패형(防牌形)] 문양을 구획하고 중앙에는 횡으로 선을 돌려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하고 그 안에 삼각형과 원형의 기하문이 대칭되게 새겨져 있다. 후자의 경우는 마멸이 극심해 기본적인 문양의 구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이며, 다만 동일한 3개의 문양이 횡렬로 배열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검파형에서 다소간 변형된 기하문으로 좌우로 대칭되어 있고, 전자와 다른 점은 문양의 상단부가 V자 모양으로 벌어지고 사선문이 외곽선 주변에 돌려져 있다. 이들은 문양의 구성요소나 제작기법에서 다소간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동일한 계통의 암각화로 판단된다. 기하학문양의 암각화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많이 제작되고 있는 것으로, 대곡리 암각화중 정상부근에 새겨진 무늬형태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죽절형동기(竹節形銅器)와 유사하며, 기하학문양의 암각화는 울주 천전리 반구대 암각화나 고령 양전동 암각화 등 조사 예가 적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판독문/해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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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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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2000 | 張明洙, 2000, 「韓國 岩刻畵의 類型과 特性」『學藝硏究』창간호, 國民大學校 博物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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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1997 | 金貞培, 1997, 「東北亞 속의 韓國의 岩刻畵」『韓國史硏究』99·100, 韓國史硏究會 |
논문 | 1997 | 張明洙, 1997, 「岩刻畵에 나타난 性信仰 모습」『古文化』50, 韓國大學博物館協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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