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장기리 암각화(高靈 場基里 岩刻畫)
- 시대
- 청동기
- 연대
- 철기 초기/청동기 후기
- 유형
- 석각
- 크기
- 높이 3m, 너비 6m
- 소재지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528
- 서체
- 없음
- 찬자 /각자 /서자
- 없음 / 없음 / 없음
- 지정사항
- 보물
- 연구정보
개관
알터 마을 입구에 있는 높이 3m, 너비 6m의 암벽에 새겨진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은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이나 바램을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로 볼 수 있다. 바위그림은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이 있는데, 동심원은 직경 18∼20㎝의 삼중원으로 총 4개가 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신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십자형은 가로 15㎝, 세로 12㎝의 불분명한 사각형안에 그려져 있어 전(田)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표현한 듯하다. 가면모양은 가로 22∼30㎝, 세로 20∼40㎝로 머리카락과 수염같은 털이 묘사되어 있고, 그 안에 이목구비를 파서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으로 부적과 같은 의미로 새긴 듯하다. 이러한 형태(形態)는 울주(蔚州) 반구대(盤龜臺)나 시베리아 암벽(岩壁)의 탈[假面]과는 차이(差異)가 있다. 상징과 기호를 이용해 제단을 만들고 농경을 위해 태양신에게 소원을 빈 농경사회 신앙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둥근무늬[圓紋]나 탈모양 등은 우리나라 선사(先史) 암벽그림[岩刻畵]을 대표하는 울주 암벽그림에 비해서 그 모양이 상당히 단순화(單純化)되었고 기법(技法) 역시 도식화(圖式化) 내지 형식화(形式化)되었으므로, 근처에 있는 금산령 석기 유적과 고인돌 유적에서 출토되는 석기와 토기와 비슷한 청동기 후기나 초기 철기시대에 만들어진 암각화로 짐작된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신앙과 사회생활 등 선사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조각사와 회화사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판독문/해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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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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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2001 | 張明洙, 2001, 『韓國岩刻畵의 文化相에 대한 硏究 -신앙의 전개양상을 중심으로-』, 仁荷大學校 大學院 史學科 博士學位論文 |
논문 | 2000 | 박정근, 2000, 「한국의 암각화 연구 성과와 문제점」『先史와 古代』15, 韓國古代學會 |
논문 | 2000 | 송화섭, 2000, 「한국 암각화연구의 현황과 과제」『韓國岩刻畵硏究』창간호, 韓國岩刻畵學會 |
논문 | 2000 | 임세권, 2000, 「한국 암각화에 나타난 태양신 숭배」『韓國岩刻畵硏究』창간호, 韓國岩刻畵學會 |
논문 | 2000 | 張明洙, 2000, 「岩刻畵를 통해서 본 우리 나라 先史人들의 信仰 思惟」『韓國岩刻畵硏究』창간호, 韓國岩刻畵學會 |
논문 | 2000 | 張明洙, 2000, 「韓國 岩刻畵의 類型과 特性」『學藝硏究』창간호, 國民大學校 博物館 |
단행본 | 1999 | 임세권, 1999, 『한국의 암각화』, 대원사 |
논문 | 1998 | 申大坤, 1998, 「神體文岩刻畵의 解釋」『科技考古硏究』3, 아주대박물관 |
논문 | 1997 | 金貞培, 1997, 「東北亞 속의 韓國의 岩刻畵」『韓國史硏究』99·100, 韓國史硏究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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