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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봉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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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용어명 탑산산성(瀋陽塔山山城)
설명
중국 요녕성 심양시(瀋陽市) 소가둔구(蘇家屯區) 진상둔진(陳相屯鎭) 동쪽에 있는 탑산(塔山)의 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산성 안에는 명대(明代) 안녕사(安寧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며, 정상에는 6각 7층 전탑이 있었기 때문에 탑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성의 위치는 요동평원과 천산산맥의 경계 지대에 해당하는데 산성 서남쪽에는 요동성이 있고, 북동쪽으로는 신성으로 비정되는 고이산성이 있다.
산성 안은 채석장을 개발하면서 성벽뿐만 아니라 성안의 모든 유적까지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는 단지 북벽의 일부만 단면을 드러낸 채 흉하게 남아 있다.
성벽은 산등성이를 따라 작은 산골짜기를 에워싸면서 쌓았는데, 원래 기초 부분은 돌로 쌓고 성벽은 황토를 다져서 쌓았다고 한다. 현재 북벽에 남아 있는 성벽의 단면을 확인해보면 성벽 기초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층층이 흙을 다져 만든 판축 토성임을 알 수 있다. 산성의 둘레는 1,000m 이하로 그리 크지 않다. 채석장이 개발되기 전에 남아 있었던 동남문 양쪽 성벽의 기초 너비는 3∼4m, 남은 높이는 1m 정도 되었다고 한다.
1940년대 일본 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산성 안에는 남문·북문·서문·동남문·북동문 등 모두 5곳의 성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정문은 남문이었다고 하며 옹성 구조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들 문지에서 붉은색 기와가 많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문루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성안은 경사면을 계단식으로 다듬어 건물지로 사용하였는데 원래 30곳 이상의 계단식 대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 계단식 대지는 주로 남문과 북문을 연결하는 중앙도로 좌우와 성벽 안쪽에 많이 있었다고 하며 건물지에는 주춧돌과 함께 붉은색 기와[獸面瓦]가 널리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밖에 성벽 위에는 지름 4m, 높이 1m의 평대가 있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탑산산성을 고구려의 ‘개모성(蓋牟城)’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산성의 초축연대에 대해서 고고학 자료가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문헌 기록에는 개모성이 7세기에 처음 등장하는데 탑산산성에서 가까운 백암성이 6세기 중반에 개축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6세기 초반 이전에는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탑산산성은 요동성과 신성의 가운데에 위치하면서, 서쪽에서 요동평원을 거쳐 천산산맥으로 진입하여 압록강하류로 내려 갈 수 있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그 위치가 군사 전략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산성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성안을 계단식으로 나누어 비교적 넓은 공간을 활용하였고 성안에서 큰 주춧돌과 함께 많은 기와가 발견되었다는 것을 통해 볼 때 단순한 군사용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지방 통치를 위한 거점성의 역할도 동시에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정원철)
참고문헌
遼??史蹟資料(遼??省博物館, 1962),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王禹浪·王宏北, 哈爾濱出版社, 1994), 고구려성Ⅱ-요하 유역편-(국방군사연구소, 1999), 高句麗古城硏究(王綿厚, 2002)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저작권 및 이용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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