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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용어명 아막성(南原·長水阿莫城)
설명 전라북도기념물 제38호. 남원시 아영면 성리 33번지 일원으로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와 경계를 이룬다. 아영면 성리마을에서 마을회관을 지나 소로의 우측으로 가면 흥부각이 나온다. 여기에서 바로 아막성까지 오르는 소로가 나있다. 이 산성은 함양군과 접경을 이루는 아영고원의 서쪽 능선에 있는 봉화산(919m)에서 남쪽으로 다시 뻗어 내린 해발 660m의 북쪽 산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다. 산성은 포곡식의 석성으로 북쪽이 낮고 북서쪽은 짓재와 협곡을 이루며 남쪽은 복성이뒷재로 지대가 높아진다. 서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남동쪽에는 아영들이 펼쳐져 있다. 산성의 평면형태는 네모꼴이나 남쪽 변이 약간 길다. 성벽의 둘레는 약 633m이다. 문지는 북변계곡의 북문지, 서벽 중앙의 서문지, 남동쪽 모서리에 가까운 동변에 동문지가 확인된다. 북벽은 지형이 낮고 완만하여 높이 4m 정도가 남아 있으며, 성벽이 직선상으로 뻗어 있고 세 군데에 길이 15m의 치성이 돌출되어 있다. 남벽의 능선 연결부분에는 치성이 있으며, 북문지의 수구 동편에는 지름 150㎝인 둥근 석축의 우물터가 있고, 운성암 뒤편에도 석축 우물이 있으며, 내부 중앙의 평탄부와 북문 동쪽에도 우물터가 남아 있다. 이 산성의 외벽은 판석형의 석재를 가로방향과 세로방향을 엇갈려 눕혀 쌓아‘井’자형을 이루면서 축조하였다. 외면의 석재는 장방형 또는 방형으로 치석하였다. 성석의 두께는 대체로 20㎝, 길이는 30∼40㎝ 가량 된다. 한편 성벽의 모퉁이부분은 사각뿔면체의 석재를 세로방향으로 촘촘하게 쌓아 곡성을 만들었다. 능선과 연결되는 남벽은 내탁식으로 축조한 반면에 나머지 부분은 협축식으로 쌓았다. 유물은 백제계 호형토기의 구연부편을 비롯하여 집선문의 동체부편, 개배편, 기와편과 가야계의 파상문이 시문된 토기 등이 확인되고 있다. 이 산성에 대한 문헌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602년 8월조 “백제가 아막성을 공격해왔다(百濟來攻?莫城).”, 616년 10월조 “신라 모산성을 공격했다(攻新羅母山城).”, 「백제본기(百濟本紀)」602년 8월조 “왕이 출병하여 신라 아막성을 포위했다(王出兵圍新羅阿莫城).” 등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백제의 아막성, 신라의 모산성 등으로 불리우던 곳으로, 이 산성은 신라의 영역에 포함되기 이전에는 남원 월산리·두락리 고분군의 주체자인 가야와 관련성이 깊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성은 남원평지와 운봉고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의 산줄기 정상 곳곳에 축조된 산성과 연결된 장성의 주성으로서 여타 산성, 보루 및 봉수 등을 관할하는 핵심적인 성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성은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복속된 이후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영토 싸움 이후에도 백제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경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시기는 6세기 중엽 이전부터 7세기 중엽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강원종)
참고문헌 장수군의 산성과 봉수(군산대학교박물관, 2002), 남원 운봉지역의 고대관방체계(강원종, 호남고고학보 27호, 2007)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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