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마공성(尙州馬孔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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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 산162과 구미시 무을면 사이에 있는 해발 700m의 기양산에서 북쪽 마공리를 향해 갈라져 나온 산등성이에 있다. 성은 해발 531m 고지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향하는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가 해발 380m까지 에워싼 테뫼식 토석혼축성이다. 산등성이의 서쪽으로 마공마을이 멀리 산 아래 내려다보이는 곳의 급경사면 바로 위쪽 두 곳은 석축을 했는데 모두 50m 정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토축을 했다. 다만 531m 고지를 중심으로 한 그 주위는 경사가 심하거나 바위 절벽으로 되어 축성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무너지기는 했지만 석성의 흔적이 뚜렷하거나 토루, 혹은 회곽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간은 904m 정도다. 그러나 531m 고지 부근의 축성 추정이 가능한 곳을 합하면 이 성의 둘레는 1,050m 정도에 이른다. 마공리 마을 뒤에서 기양산 정상을 향해 패인 큰 골짜기가 ‘가는골’이고, 마공 마을 뒤에서 531m 고지의 남쪽으로 움푹 패인, 가는골 북쪽의 작은 골짜기가 ‘성수골’이다. 얼마 전까지도 마공리 마을 사람들은 가을의 적당한 날에 제관을 뽑아서 ‘성뚝’이라고 불리는 이 성 안의 정상에서 동제를 지내 왔으나 지금은 산 아래 성수골에서 지낸다고 한다. 성 안에는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이 2개소 나타난다. 531m 고지 정상에서 북쪽으로 산등성이를 따라 250m 가량 아래로 내려가면 땅을 고르고 건축한 흔적이 있다. 8m거리 내에 일직선으로 주춧돌 5개가 박혀 있다. 또 하나는 이 산등성이를 기준으로 서쪽 안부에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성 안에서는 가장 넓게 다듬어진 터에 기와파편이 발견된다. 그러나 꼭 필요한 우물터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서쪽 안부 건물지 아래에 우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곳이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34 잡지(雜志) 제3 지리의 상주에는, 경덕왕 16년에 이름을 상주라고 고칠 때 세 개의 영현이 있었는데, 그 중 “청효현은 본래 석리화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서 지금은 청리현이다 .”라고 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권40 잡지9는, “신라 십정에서 음리화정의 옷깃 색은 청색인데 진흥왕 5년(544)에 설치했다.”고 전하고, 이병도의 『국역 삼국사기(國譯三國史記)』에서는 지금의 상주 청리면이라고 했다. 음리화정에 배치된 무관은 대대감 1인, 기병을 거느리는 소감 2인, 화척 2인, 삼천당주 6인, 삼천감 6인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 성이 이와 관련된 성이 아닌지 추정해 본다.(장용석) |
참고문헌 | 문화유적분포지도-상주시-(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2), 증보 상주문화유적(상주향토사연구원, 2004) |
구분 | 용어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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