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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봉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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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용어명 다대포성(釜山多大浦城)
설명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다대초등학교 일원에 위치한다. 경상좌도 부산포진 관하의 수군진성으로서 조선 초기 성종 21년(1490) 11월에 축조되었는데, 규모는 둘레 1,806척, 높이 13척의 석성으로 동서남북에 4대문이 있었다. 병선 9척으로 수군 723명이 수비하였다. 종 4품의 무관이 장인 만호영(萬戶營)이었으나 곧 정 3품의 수군첨절제사의 첨사영(僉使營)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다대포성이 장림포(長林浦)에 있었는데 현 위치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축성이 있었고, 선조 22년(1589) 성지를 보수, 신축하여 둘레 1,870척으로 증축된 듯하다. 이 때 축조된 성이 임진왜란으로 파괴되었다가 다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고종 32년(1895)의 기록에는 둘레 1,918척의 기록이 보인다.
1998년에 다대동 181, 181-1번지가 정밀 지표조사되었다. 외벽은 높이 1.6m 정도 잔존하며, 가로 50∼70㎝, 세로 40∼50㎝ 크기의 안산암 또는 역암의 할석을 10㎝ 내외 크기의 잔돌로 틈새 없이 끼워 축조하였다. 내벽의 경계는 확실하지 않으나 외벽에서 안쪽으로 7m까지 성돌이 보이고 있는데, 외벽에서 안쪽으로 2m 지점이 외벽과 동시에 축조된 듯하며, 흘러내린 석축 위로 3.3m, 4.3m, 6.3m지점에서 막쌓기한 석축이 계단상으로 보이고 있어 증·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외벽에서 안쪽으로 3.3m지점에서 부터 복토된 토층이 보이고 있는데, 이 토층은 현재 노출된 석축의 상부 경사면을 따라 비스듬히 다져져 있어 계단상의 성벽 위로 황갈색토와 흑갈색 점질토를 피복한 것으로 보인다. 내벽쪽 석재의 한계 최저지점에서 외벽 최상부까지의 높이는 2.5m로, 석축의 상태나 범위로 볼 때 전체 성폭은 5m 전후로 추정된다. 성내에서 수습된 유물은 인화문 분청사기편, 백자편, 암수키와편, 상평통보 등 소량으로 자기편의 경우 백자편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나동욱)
참고문헌
부산지역의 성지에 관한 검토(나동욱, 박물관연구논집 2, 부산직할시립박물관, 1993), 다대1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부지내 지표조사(한국문물연구원, 2006)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저작권 및 이용범위
  • 저작권 : 국립문화재연구원
  • 이용범위 : 제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 정보제공부서 : 고고연구실
  • 담당자 : 송효진
  • 문의 : 042-860-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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