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가네다성[長崎金田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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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가네타노키 혹은 가네다죠라 부른다.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의 쓰시마[對馬島]남섬의 북쪽 끝에 있는 죠야마[城山]에 있는 한국식 산성이다. 쓰시마의 남섬과 북섬 사이의 아소만[淺茅灣]의 입구에 있으며 해발 275m의 성산정상과 계곡을 포용하고 있는 토루와 석축의 성벽으로 되어 있다. 한반도 쪽을 조망하기 좋은 곳으로 통칭 구로세[黑瀨]의 죠야마로 불린다. 성벽의 둘레는 2.8㎞이고, 성내 면적은 55㏊, 평탄지의 면적은 21,500㎡에 달하며, 석축은 2∼7m의 높이로 잘 남은 곳은 8.5m에 달하는 외측 성벽을 볼 수 있다. 북서쪽은 산봉우리를 감싸고 남향한 작은 계곡 3곳을 에워싸고 있다. 최근까지의 조사결과석축 성벽 내측에서 토루와 성문 유구가 발견되고, 석축의 성문도 구조가 밝혀졌다. 토루와 목책으로 된 내측 벽체는 거의 알아보기 어렵도록 낮게 남아 있으나, 제3 문터와 제2문터 사이의 안부(鞍部)에서 조사된 성문은 굴립주로 만든 작은 규모의 건물이 있는 높은 대지 북측의작은 곡부에 석렬을 만들고 문짝 기둥의 홈이 있는 초석이 발견되었다. 석축의 성벽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제1,제2, 제3의 계곡 한 켠에 성문의 개구부가 남아 있다. 이치노키토[一の木戶]라 불리는 곳에는 성벽이 직각으로 꺾이며 만들어진 치성(雉城)이 있고, 그 북측에 성문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두 번째 성문은 둥근 홈이 파여진 초석이 남아 있고, 제3 성문에도 비슷한 구조의 초석이 있다. 성문은 계단식을 이룬 문도가 안팎으로 이어지며, 부분에 따라 석축의 방법이 조금씩 다른 양상이다. 『니혼쇼키(日本書紀)』에서는 664년에 쓰시마[對馬嶋], 이키노시마[壹岐嶋], 치쿠시노구니[筑紫國]등에 사키모리[防人]와 스스무[烽火]를 설치하였다고 하고, 667년 11월에는 쓰시마노구니[對馬國]에 가네다성[金田城]을 쌓았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현재의 토루로 된 유적이 당시의 것인지, 석축의 성벽이 당시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즉, 신라로 침입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5세기 초반에 축성되었 을 가능성, 7세기 후반의 신라와 당의연합군이 백제를 후원한 왜(倭)를 침공할 것이 예상되어 축조한 것이 기록에 나타난 축성이고, 9세기에 일본이 신라 침공 계획을 세우는 등의 사건과 관련되어 축성이 다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15세기 초에 조선 왕조가 대마도를 정벌할 때에도 일정한 축성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현존하는 산성 유적으로 전체가 석축된 성벽을 가진 경우는 이 곳 가네다성이 유일한 예가 된다.(차용걸) |
참고문헌 | 西日本に於ける朝鮮式山城の硏究(鏡山猛, 日本學術振興會硏究報告, 1960), 朝鮮式山城と神籠石(小田富士雄, 朝鮮式山城の檢討, 1978) |
구분 | 용어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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