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사과둔 동굴유적(遼寧 沙鍋屯 洞窟遺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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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중국 요녕성 호로도시[葫芦島市, 舊 금서현(錦西縣)] 남표진(南票鎭) 사과둔촌(沙鍋屯村) 동남쪽 1.5㎞에 있는 동굴유적이다. 이 일대는 요서회랑(遼西回廊)을 막고 있는 송령산맥(松嶺山脈)의 동쪽으로 여강[女儿河]의 지류가 산 남쪽에서 흘러가고, 동굴은 산의 남쪽기슭에 있다. 사과둔 동굴은 해발 216m 높이에 있고, 동굴입구는 서남쪽으로 35˚방향이다. 1921년 6월 스웨덴 지질학자 앤더슨(J. G. Andersson)이 요녕(遼寧) 서부지역에서 광산조사를 할 때 이 동굴 안에서 인류활동의 흔적을 발견하고 발굴을 진행하였다. 동굴의 규모는 작은 편으로, 동굴입구의 너비는 1.8m, 높이 1.5m, 깊이 5m 정도이다. 동굴의 천정은 거의 둥근모양이고, 동굴바닥은 동굴 밖의 지표보다 조금 낮았다. 동굴 내 퇴적은 모두 5개층으로 나뉘었다. 발굴된 유물은 주로 신석기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토기, 석기, 뼈도구 및 돌장식품 등이있다. 석기의 종류로 떼어 만든 화살촉과 돌송곳, 격지 및 간돌도끼 등이 있고, 토기는 모래섞인 것과 채도(彩陶)가 함께 나왔는데, 대표적인 토기로는 ‘之’자무늬와 꼰줄무늬[繩紋]가 찍힌 회색모래질 원통모양 단지[筒形罐]와 채도(彩陶)로서 몸체부분이 한번 꺾인 소래기[折腹盆] 그리고 양손잡이 달린 항아리[雙耳壺] 등이다. 이 밖에 뼈송곳, 뼈바늘, 뼈바늘통, 뼈화살촉 등의 뼈도구와 돌고리[石環], 돌구슬, 동물모양 치레걸이 등의 장식품도 출토되었다. 한편 이 유적에서는 42개체분의 사람뼈도 출토되었는데, 보고자는 당시 이 동굴을 고인류가 거주한 장소가 아니라 제사유적의 하나로 보았고, 채도(彩陶)와 같은 유물을 보고 앙소문화(仰韶文化)의 범주로 이 유적을 이해하였다. 이에 대해 1950년대 초 안지민(安志敏)은 사과둔 동굴에서 나온 격형토기[鬲形陶器]의 시기를 더 늦은 것으로 보아야 하며, 발굴 당시 지층구분이 과학적이지 못했음을 지적하였다. 이후 사과둔 동굴유적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 최근 요녕성 고고연구자들이 이 일대에 대한 조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사과둔 동굴유적과 비슷한 입지에 비슷한 문화성격을 지닌 동굴유적을 여러 곳 발견하였다. 이 자료들에 기초해서 최근에는 사과둔 동굴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후홍산문화(後紅山文化)인 소하연문화(小河沿文化)와 홍산문화 시기가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과둔 동굴유적은 중국 근대고고학사에서 정식으로 발굴된 첫번째 유적으로서, 적봉(赤峰) 홍산후(紅山後)유적이 발굴되기 전 홍산문화의 존재를 알려준 중요한 유적이다.(진소래) |
참고문헌 | 奉天錦西沙鍋屯洞穴層(安特生, 中國古生物志 丁種 第一號 第一冊, 地質調査所, 1923), 沙鍋屯洞穴層位之硏究(安志敏, 中國新石器時代論集, 文物出版社, 1982), 紅山文化(郭大順, 文物出版社, 2005) |
구분 | 유적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신석기시대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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