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각추상석기(角錐狀石器 / Gakchusang-seokgi)
설명 각추상석기라는 명칭은 일본 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인데, 학자에 따라 삼릉첨두기三稜尖頭器, 선저형석기船底形石器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학계에서는 모뿔석기, 또는 추형錐形찌르개라고 한다.이 석기는 주로 두텁고 긴 격지를 선택하여 배면의 양변을 등방향으로 가파르게 잔손질하여 위 끝 부위distal end 또는 굽 부위proximal end까지 뾰족하게 만든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양변뿐만 아니라 등면의 모서리를 안팎으로 잔손질하여 가지런한 능선을 만든 경우도 있으며, 배면이 잔손질된 경우도 있다. 날로 추정되는 뾰족한 부위의 단면은 세모, 그리고 잡이로 추정되는 부위의 단면은 대개 사다리꼴이다. 이 석기는 찌르개 또는 뚜르개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단양 수양개, 광주 삼리, 임실 하가 유적에서 각 1점씩 발굴되었으며, 순천 우산리 외우유적에서는 1점이 지표에서 발견되었다. 이로 보아 각추상석기는 우리나라의 중부와 남부에 분포했던 것으로 보인다. 돌감은 흑요석과 산성 화산암(유문암과 응회암)의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흑요석제 각추상석기는 소형, 산성 화산암제 각추상석기는 대형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수양개, 하가, 외우 유적의 것은 한쪽만 뾰족한데 반하여, 삼리유적의 것은 양 끝이 모두 뾰족하여 서로 형식이 구별된다.수양개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값은 18,600~15,350±200년 전이다. 하가유적의 경우는 19,700±300년 전과 19,500±200년 전에 해당한다. 보정 연대는 각각 기원전 21,500년과 기원전 21,300년이다. 그리고 세 유적의 석기갖춤새를 보면 좀돌날몸돌 또는 좀돌날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각추상석기는 좀돌날석기 단계에 속하며 늦어도 기원전 21,300년에는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인접한 일본 규슈九州의 경우 이 석기는 23,000년 전에 분출한 사쿠라지마桜島 P17 화산재층 위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좀돌날석기 시기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각추상석기는 슴베찌르개, 나이프형석기, 좀돌 날 등과 함께 출토되어 후기 구석기시대 후반의 발달된 사냥 기술을 이해하고, 나아가 일본과의 교류를 규명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기길)
참고문헌 舊石器考古學辭典 (舊石器文化談話會, 2000), 후기구석기시대 각추 상석기의 연구 (장용준, 한국민족문화 33,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 소, 2009), 舊石器時代の韓·日交流-新資料を中心として-(李起吉, 考古 學ジャーナル, ニューサイエンス社, 2011)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구석기시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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