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타날 판(打捺板)_토기
설명 토기 제작 시 수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 표면을 두드려 외형을 다듬거나 기벽器壁의 점토 조직을 치밀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목제의 제도製陶용 도구이다. 토기의 경우 타날 판으로 그 표면을 두드릴 때 안쪽에 받치는 도구를 내박자라 하므로, 이에 대응하는 용어로 ‘외박자外拍子’라 부르기도 한다. 타날 판은 손잡이가 있는 넓적한 판자형이 일반적인 형태이며, 그 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도장 같은 형태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 봉황동 유적 70호 저습지에서 출토된 목제 타날 판은 손잡이가 일부 유실되었으나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손잡이 부분이 가장 두껍고 목판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얇다. 전체 길이 22.5cm, 손잡이를 제외한 목판의 길이 18cm, 너비 9cm, 두께 0.9~1.5cm이다. 목판의 단면은 상면이 약간 볼록하고 하면은 평평하다. 상면에는 가로 방향으로 너비 0.1cm 정도의 평행선 5조가 먼저 새겨지고 그 위에 세로 방향으로 너비 0.3~0.4cm 의 평행선이 10조 새겨져 있다. 손잡이는 단면 육각형에 가깝고 두께는 2.1cm이다. 대구 구암동 486-1 유적의 삼국 시대 32호 수혈에서도 타날 판으로 추정되는 목기木器가 출토되었다. 전체 길이 25.6cm(목판 길이 18.1cm, 손잡이 길이 7.5cm), 너비 2~5.8cm, 두께 1.1~4cm이다. 목판의 단면은 타원형에 가깝다. 목판의 표면에 침선은 확인되지 않는다. 타날 판의 사용은 원삼국 시대 타날문 토기를 제작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이해된다. 목판에 평행 또는 격자상의 침선을 새기거나 새끼줄 같은 것을 감아서 토기의 표면을 두드림으로써 평행선문, 격자문, 승문 등과 같은 일종의 문양 효과가 나타난다. 한편, 점토대 토기 단계에 해당하는 보령 교성리 유적, 안면도 고남리 패총과 송국리 토기 단계에 해당하는 보령 관창리, 서천 구복리 종배 유적 등, 서해안 일대의 유적에서는 평행 타날문이 찍힌 무문 토기가 확인된 바 있다. 이와 같은 발견 사례 를 통해 비록 이 시기의 타날 행위가 그릇의 외형 조정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타날 기법의 등장 시기에 대해서는 재해석이 필요하게 되었다. (김재철)
참고문헌 김해 봉황동 유적(경남고고학연구소, 2007), 인천 불로동유적(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7), 대구 구암동 486-1유적(대동문화재연구원, 2008), 토기제작의 기술혁신과 생산체계(이성주, 학연문화사, 2014)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생산유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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