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안계리 고분(慶州 安溪里 古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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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경주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20㎞ 떨어진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에 위치한 고분군이다. 고분들은 안계리 사골마을 남동쪽 해발 80m 이하인 안계저수지의 동측 능선, 즉 동측의 산지에서 안계저수지를 향해 남서로 뻗는 몇 갈래의 지맥 가운데 중간에 위치한 2개의 구릉 위에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으나 서측의 하단부에 위치한 것들은 안계저수지에 의해서 물에 잠겼다. 약 240여 기의 고분들이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 중에는 저경이 15~20m되는 큰 고분들도 있다. 고분들 가운데 34기가 포항제철공업단지의 공업용수저수댐인 안계저수지 공사로 인하여 훼손되게 됨으로 인해서 1969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서 발굴 조사되어 보고되었다. 조사된 고분들의 봉토는 대부분 유실되었으나, 남아 있는 것들의 경우 대부분 타원형으로 큰 것은 저경이 15~20m 정도였다. 봉토의 가장자리를 따라 둘레돌(護石)을 두른 것들도 있었다. 봉토가 남아 있는 경우는 대부분 한사람무덤(單葬墳)이었으나 2개의 덧널을 병렬로 배치한 두사람무덤(兩葬墳)도 1기(4호) 있었다. 그리고 봉토가 남아 있지 않는 것 중에서는 여러 기의 덧널(槨)을 병렬로 배치하고 봉토를 덮었던 여러사람무덤(多葬墳)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많았다. 묘제는 봉토가 남아 있는 경우는 모두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이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돌무지덧널무덤이 대부분이고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과 독널무덤(甕棺墓)이 혼재하였다. 덧널은 조사된 것 가운데 21기가 동~서를 장축으로 하였으나 8기는 남~북을 장축으로 취하였고, 나머지 5기는 남동~북서 또는 북동~남서의 방향으로 축조되어 있었는데, 비교적 큰 것의 경우 대부분 동~서를 장축으로 하였다. 그리고 이 경우 피장자의 두향(頭向)은 동쪽으로 추정되었다. 무덤은 외덧널식(單槨式)이 많았으나 주부곽식(主副槨式)도 있었는데, 주부곽식의 경우 장방형(長方形)의 으뜸덧널(主槨)과 장방형의 딸린덧널(副槨)을 ??T??자상으로 또는 ??11??자상으로 배치한 이혈묘광주부곽식(異穴墓壙主副槨式) 도 있었으나, 장방형의 으뜸덧널과 방형(方形)의 딸린덧널을 ??凸??자형으로 배치한 동혈묘광주부곽식(同穴墓壙主副槨式)이 많았다. 또 대부분은 으뜸덧널을 하나의 덧널로만 구성하였으나 돌무지덧널무덤 가운데는 안덧널(內槨)과 바깥덧널(外槨)을 갖춘 이중곽식도 있었다. 또 으뜸덧널의 한쪽을 막아 부장간을 따로 설치한 것도 있어서 아주 다양한 묘제를 보여 주었다. 조사된 고분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2호분과 4호분이다. 2호분은 동~서 저경 14.2m, 남~북 저경 11m의 타원형분으로, 내부 주체는 돌무지덧널로 무덤구덩이를 파고 분벽(墳壁)을 따라 적당하게 돌무지시설을 한 다음,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한 으뜸덧널을 남동에 딸린덧널을 북서에 붙여 ??日??자형으로 설치하였다. 그리고 덧널과 처음 설치한 돌무지 사이에 잔돌을 채우고 그 위에 얇게 돌을 쌓은 다음 봉토를 덮은 것이다. 주부곽을 합한 크기는 길이, 너비, 높이가 6.9×1.8×2.1m이고, 으뜸덧널의 내부에는 머리측에 토기 등을 부장하였고, 덧널 위의 봉분 가운데에 말과 마구류를 부장하였다. 4호분은 봉토저경 약 20m, 높이 3m 가량의 대형분으로 내부에 남곽과 북곽 2기의 덧널을 배치한 두사람무덤이다. 남곽은 이중곽식으로 안덧널의 크기는 3.4×1.1×0.45m 정도이고 바깥덧널의 크기는 길이 5.5m, 너비 3.5m의 크기이다. 안덧널과 바깥덧널 사이에는 안덧널의 높이 만큼 돌을 채워 석단(石段)을 마련하였다. 남곽과 1m 간격으로 배치된 북곽은 외덧널식(單獨槨式)이었다. 남곽에는 내곽의 머리측과 안덧널과 바깥덧널 사이의 석단 곳곳에 토기 등을 부장하였다. 안계리 고분군 가운데 가장 화려한 유물이 출토된 것이 이 4호분으로 북곽에서는 유리잔?곡옥장식목걸이(曲玉附頸飾)?금제드리개(金製垂下飾) 등과 많은 토기들이, 남곽에서는 비늘갑옷(札甲)?솥(鐵釜)?투겁창(鐵矛) 등의 철기류와 많은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4호분에서 출토되는 유물들로 보아 비록 고분군은 산간 쪽에 치우쳐 있지만 안강에서 포항으로 향하 는 길목을 장악하고 있던 지배집단의 분묘들로 생각되며, 출토되는 토기들로 보아 대략 5세기 초에서 6세기 중엽 사이에 고분들이 지속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
참고문헌 | 安溪里古墳群 發掘調査報告書(池健吉?趙由典, 文化財硏究所, 1981) |
구분 | 용어 |
사전명 | 한국고고학사전(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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