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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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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용어명 고이산성(撫順 高爾山城)
설명
中國 遼寧省 撫順市 渾河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 산성으로, ??북관산성(北關山城)??이라고도 부른다. 1933년에 발견되어 일본학자들이 1940년과 1944년 동문지와 서문지 등을 발굴하였다. 그 뒤 중국학자들이 1956년과 1963년에 간단한 지표조사를 하고, 1983~85년에는 성 내부를 시굴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산성의 동쪽에는 撫西河가 남류하여 渾河로 흘러들고, 남쪽에는 혼하가 동에서 서로 흐르면서 천연의 해자를 이룬다. 또한 무순~철령간 도로가 남북으로 동성과 남위성을 관통하고 있다. 동성(東城), 서성(西城), 남위성(南衛城), 북위성(北衛城)과 동남쪽 3개의 소성 등으로 이루어진 복곽식(複郭式) 산성이다.
최고봉인 장군봉(將軍峰)에 오르면 남쪽으로 무순(撫順)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군봉에서 내리뻗은 세 줄기의 자연능선을 따라 흙 또는 토석(土石)으로 성벽을 축조하였는데, 중앙 능선이 동성과 서성의 자연경계를 이룬다. 중앙 능선과 2개의 외곽 능선 사이에 형성된 2개의 계곡은 각각 동성과 서성의 내부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이처럼 고이산성은 지세가 번잡하기 때문에 복곽식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동성 북벽 중간지점에는 성벽 바깥으로 작은 능선이 뻗어 있는데, 방어상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북벽에 잇대어 혓바닥 모양의 북위성을 동~서 140m, 남~북 50m 규모로 축조하였다. 동성의 동남쪽 모서리에도 동쪽으로 뻗은 능선상에 고리 모양의 소성을 3개 축조해 놓았으니, 전체 평면은 긴 타원형으로 동~서 300m, 남~북 150m이다. 이것도 방어상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시설이다. 동성과 서성의 남쪽에도 남위성을 구축해 놓았는데, 동성 동벽의 남단과 서성 서남벽 동남단 사이의 능선과 골짜기를 연결하여 성벽을 구축하였다. 1963년 조사 당시에는 약 500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동성은 중심성으로 그 평면 형태는 북서~남동을 장축으로 하는 장타원형에 가까운 부정형이며, 지형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다. 북벽은 길이, 높이가 약 900×5m이고, 동벽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데 길이, 폭, 높이가 700×10×6m이며, 서벽은 길이, 높이가 500×4m, 남벽은 700×3m 등으로 총 둘레는 2.8㎞이다. 이 동성의 본체에 북벽과 남벽의 능선을 보완하기 위하여 축조된 소성의 길이를 합하면 동성의 성벽 총길이는 4㎞에 달한다. 성벽의 절개 지점에서 판축의 층차(層次)가 나타났는데, 매층의 두께는 10~15㎝이며, 외벽의 일반적인 기울기는 45~60。이다.
동성에는 남?북?동쪽의 3개소에 문지가 설치되어 있다. 남문은 정문으로서 현재는 9.5m 너비의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남문지의 두 측벽에는 높이 10m의 토루가 잔존하며, 판축의 층차가 10㎝로 나타나고 있으며, 본래 옹성 구조였다. 남문지를 나서면 바로 남위성의 남문으로 연결된다. 북문지는 너비 5m인데 그 구조는 미상이다. 동문지의 폭은 6m이며, 두 측벽의 성벽 높이는 6m이다. 1940년대의 발굴에서 문루 지붕에 사용된 기와가 다량 출토되었다.
성내의 물은 동성의 남문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방수구의 양쪽은 돌로 쌓았으며, 수문 가까운 곳에는 길이 2m 가량 되는 7개의 나무기둥으로 만든 목책 난간이 남아 있다. 동?서성에는 산등성이를 따라 비교적 높은 곳에 몇 개의 관측대를 세워 놓았다. 서성의 서벽 내측 및 동성의 동벽 외측에는 수백 m에 달하는 넓은 길을 닦아 놓았는데, 이는 순찰이나 군수물자를 운송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상과 같이 동성의 남?북?동벽에 주요 성문이 있고 서벽에 서성과 통하는 작은 문이 있으며, 고구려 유물도 대부분 동성에 분포하고 있어 동성이 중심성임을 알 수 있다. 동성의 동문 부근 샘에서 큰 귀부(龜趺 : 길이, 너비, 높이 1.76×1.3×0.7m)가 발견되었는데 요?금 이전 시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 유물로는 단지, 항아리, 시루 등의 토기와 쟁기, 삽, 도끼 등의 철제농기구 그리고 등자 등의 마구와 투구, 쇠창, 화살촉 등의 무기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봉황, 용머리 장식 기와와 같은 요대(遼代)의 유물도 다량 출토되었다. 
고이산성은 요동평원과 혼하 상류 산악지대의 접경지역으로, 요동(遼東)에서 고구려 국내성으로 들어가는 교통로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다. 그리하여 일찍부터 고구려 서북 대진(大鎭)인 신성(新城)으로 비정되어 왔다. 고이산성의 축조연대는 『三國史記』 고구려본기 고국원왕 5년조의 신성축조 기사를 근거로 335년경으로 파악하는 견해, 태조왕 3년 요서 10성 축조기사 및 철제농기구가 후한대 유물이라는 점을 들어 태조왕대로 보는 견해, 그밖에 고구려 후기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대체로 서진(西晋)의 혼란으로 요동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급격히 쇠퇴한 3세기 말~4세기 초에 고구려 영역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참고문헌
北關山城(三上次男?田村晃一, 中央公論美術出版, 1993), 撫順高爾山城結構布局辨析(陳大爲, 遼海文物學刊 2, 1992), 高句麗新城的始築年代(李甸甫, 遼海文物學刊 2, 1988), 遼寧撫順高爾山城發掘簡報(徐家國?孫力, 遼海文物學刊 2, 1987), 遼寧撫順高爾山古城址調査簡報(撫順市文物工作隊, 考古 12, 1964), 增訂 撫順史話(撫順新報社, 1940), 高句麗の新城(渡邊三三, 奉天圖書館叢刊 10, 1933)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사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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