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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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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명 아화나시에보문화(Afanasievo Culture)
설명
유라시아 스텝지역에서 돈강유역, 흑해연안 등 서변부터 시베리아까지 펼쳐진 지역에 B.C. 3000년경 다수의 동석기(銅石器)문화가 존재하는데 이 중 한 문화이다. 이들은 상당히 넓은 지역에 많은 문화적 상사성(相似性)을 가지며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목축에 기반한 경제에 보다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우랄(Ural)지역부터 드네프르(Dnepr)지역의 동석기시대 문화를 한데 묶어서 ??고대얌문화공동체(古代土壙墓文化, Drevneyamaya Kultura)??라고 부른다. 
아화나시에보문화는 이런 유라시아 동석기시대 전통의 가장 동쪽인 남시베리아에 위치한다. 그 이름은 예니세이강 하안의 유적에서 유래되었다. 주 분포지역은 예니세이강 상류지역, 미누신스크 분지인데, 최근에 우코크(Ukok), 우스트-콕사(Ust-Koksa)와 알타이의 산악지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아화나시예보문화는 대부분 묘제의 형태로 발견된다. 그 무덤들은 떼(群)를 이루어 밀집하며 각 무덤의 주위로 낮게 원형의 석열이 돌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묘광(墓壙)은 괴석(塊石)으로 충전되었으나 돌이 아예 없는 경우, 괴석이 거의 없는 경우 등 각 무덤마다 다양하다. 묘광 안에는 화덕(爐)의 흔적과 동물뼈 조각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장시 또는 후에 특정한 의식을 거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棺)시설은 특별히 설치되지 않았으며 경우에 따라서 자작나무 껍질로 묘광의 주위를 돌린 예(베르텍Bertek 33지점 3호 고분)도 있다. 시신은 굴신장(屈身葬) 및 측와굴신장(側臥屈身葬)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굴신장의 경우 무릎을 좌측 또는 우측으로 꺾은 것이며, 측와장의 경우는 파지릭 문화처럼 완전히 옆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옆으로 꺾여있는 상태이다. 2인장의 경우는 양 시신이 서로를 마주하고 누워있다. 예컨대 우코크의 베르텍 33지점에서 발굴된 4기의 아화나시에보문화의 고분을 보면, 3기는 1인장이며 1기는 가족묘인데, 그 가족묘에는 남?여?아이가 공동으로 함께 매장되어 있었다. 시체는 직장(直葬)에 무릎이 굽은 채로 주로 발견되었다. 시체 머리의 한쪽에 토기, 고기조각 등이 발견되며 옷에는 짐승뼈나 이빨로 장식하며 일부 물고기 비늘로 장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토기는 주로 첨저(尖底)에 공문(komb-pit) 혹은 점선으로 솔잎형 문양을 낸 것 등이 대표적이다. 유물은 동검(銅劍), 동반지, 동침통과 귀걸이, 목걸이 등 장신구가 많다.
고분의 공반유물로는 견부(肩部)가 축약된 반란형(半卵形)토기가 대표적이며 그 외에 마제석부(磨製石斧), 뼈로 만든 소형장신구 등이 소량 발견된다. 금속기는 홍동제 칼, 귀걸이, 낚싯바늘 등의 형태가 소량 발견된다. 토기의 경우 전면에 사선문(斜線文)이 시문되었으며 구연부(口緣部)에 반관통공렬문(半貫通孔列文)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아화나시에보문화의 집자리(住居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지 예니세이강 유역의 테프세이(Tepsey)에서 층위상 아화나시에보문화의 전형적인 토기가 원형의 화덕(爐)에서 발견된 예가 있을 뿐이다. 
생활상은 목축, 홍동의 제련기술로 대표된다. 아화나시에보 고분 내에서는 양, 가축화된 소, 말 뼈 등이 발견되었는데, 주목할 것은 아화나시에보문화 이전에는 이런 짐승의 목축 내지는 가축화의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다가 아화나시에보문화기에서 갑자기 발전된 형태로 출현한다는 점이다. 아화나시에보문화는 처음 연구 할 때만 해도 주로 미누신스크지역을 중심으로 알려졌고 알타이에서 소수가 발견되었을 뿐이지만 현재는 몽고 서부지역, 투바, 중국 신강성 등 다양한 지역에 분포함이 알려졌다. 
아화나시에보문화의 기원은 통상 흑해연안에서 우랄에 분포하는 고대얌문화공동체 주민의 이주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에서 지적한 바, 첨저형의 반란형토기, 장방형(長方形)의 움을 파서 만든 묘광, 유물복합체 등의 유사성은 서쪽에서 목축에 기반한 주민들이 대량으로 이주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정황은 아화나시에보문화와 그 이전시기에 시베리아에 존재하던 문화사이에는 전혀 동질성이 없다는 점과 형질인류학적인 자료는 일관적으로 아화나시에보인이 전형적인 인도-유럽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도 부합한다. 아화나시에보문화의 형질자료는 이들이 장두(長頭)에 얼굴은 짧고 넓은 형태이며 장신(長身)인데, 시베리아에서 기존에 발견된 몽골로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알타이, 미누신스크, 투바, 몽고, 중국 신강성 등지에서 발견된 아화나시에보문화의 인골들은 약간의 지방적인 특색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대얌문화공동체의 두개골과 기본적인 속성을 공유한다. 한편 최근 연구자료에서는 이 가설에 대하여 부정적인 결과를 제시하고 있고 오히려 이들의 문화는 중앙아시아 기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어 아직 이 문화의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알렉세예브의 인류학적 견해로는 과거 데베쯔에 주장되던 크로마뇽인형이라는 견해에 대하여 용어자체에 대하여 논박하고 이들의 인류는 전형적이 유럽인이면서 자주 몽고인과 혼합된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아화나시에보문화는 의의는 1)시베리아에서 동석기의 존재를 증명 2)최초 유럽인종의 시베리아 거주 3)본격적인 목축 및 가축의 등장 4)고대얌문화공동체의 일부(또는 지역변종)로 유라시아의 스텝지대에 최초로 광범위한 공동체의 형성(아화나시에보문화 이후에 안드로노보문화, 카라숙문화, 스키토-시베리아유형, 흉노문화 등 스텝지역은 비슷한 문화적 특성을 가진 공동체들이 형성되는데, 모두 목축 또는 기마를 기본으로 하는 이동민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사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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