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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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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명 낙랑 토성(樂浪 土城)
설명
낙랑군 설치지역에 분포하는 평지성이면서 방형인 토성을 말한다. 낙랑군시기의 고분군과 인접하여 분포하므로 군현지배와 관련된 치소로 해석되는데, 평양시 낙랑구역 토성동 토성, 평남 온천군 성현리 토성, 황해도 은율군 운성리 토성, 신천군 청산리 토성, 봉산군 지탑리 토성, 함남 금야군 소라리 토성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먼저, 토성동 토성(土城洞 土城)은 낙랑군의 소재지로 추정되는데, 대동강 남안과 접한 대지에 위치한다. 토성의 규모는 동서 700m, 남북600m, 면적은 약 31만㎡이다. 성벽은 토축이고, 동면?서면?동서면은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동북면의 성벽은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토성의 남쪽에는 동서 8㎞, 남북 4㎞의 범위에 낙랑군 시기의 무덤 2,000여 기 이상이 분포한다. 1910년 鳥居龍藏가 낙랑군과 관련된 유적으로 주목한 이래, 1935년 봄과 가을에 각 1회씩(1?2차), 1937년 1회(3차) 등 총 3회의 발굴조사가 조선고적연구회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간단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모두 14개 트렌치를 넣어 전돌이 깔린 보도, 우물, 자연 판돌로 조립한 암거(暗渠), 초석, 전돌이 깔린 유구 등이 검출되었다. 여기서 다수의 봉니, ??왕부(王扶)??동인(銅印)?우심전(藕心錢)?반량(半兩)?소천직일(小泉直一) 등의 동전, 반량전?오수전?화천 등의 용범, ??낙랑예관(樂浪禮官)?????낙랑부귀(樂浪富貴)?? 등의 문자와당이 출토되어 낙랑군의 중심지임이 밝혀졌다. 당시 발굴유물은 현재 동경대학 고고학연구실에 보관중이다. 1944년 평양 낙랑연구소가 한 차례 더 조사하였을 때에 중앙 대지의 남쪽에서 전돌이 깔린 유적을 발견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1968년 북한학계가 한 차례 발굴을 하였다고 전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토성의 사용연대에 대해서는 B.C. 108년 군현 설치부터 군치로 사용되었다는 견해(關野貞, 藤田亮策), 후한 말~진(晉) 초에 고구려 압박을 받으면서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했다는 견해(今西龍), B.C. 82년경 진번?임둔군의 폐지와 현도군의 퇴축 등 일련의 과정에서 강남으로 이동했다는 견해(原田淑人?駒井和愛) 등이 있다.
온천군 성현리 토성(城峴里 土城)은 내성과 외성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외성은 동서 450m, 남북 300m이며, 내성은 동서 170m, 남북 120m이다. 내성의 동벽 단면에서는 기와와 재가 포함된 층위가 확인되었는데, 세형동검 검파두식(劍把頭飾), 화분형토기편, 기와, 벽돌 등이 출토되었다. 주위에서 B.C. 1세기대로 편년되는 나무곽무덤인 갈성리 갑분(甲墳)이 발굴조사된 바 있으며, 동북쪽 480m 지점에서 점제현신사비(?蟬縣神祠碑)가 발견되어 이 성을 점제현의 치소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은율군 운성리 토성(雲城里 土城) 역시 내성과 외성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성은 동서 170m, 남북 60m 정도이며, 외성의 둘레는 1㎞ 내외이다. 1962년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의 발굴조사에서 기둥받침돌 구조를 지닌 건물지와 배수로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유물로는 화분형토기, 명사리형 옹관묘와 비교되는 토기, 쇠손칼(鐵刀子), 쇠화살촉, 쇠낫(鐵鎌), 보습, ??천추만세(千秋萬歲)??명 와당 등이 출토되었다. 동쪽 성벽 바깥에서는 너비 8m, 깊이 1.4m의 해자도 확인되었다. 토성 남쪽에는 낙랑군 시기의 운성리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어 당시 현(縣) 치소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다.
신천군 청산리 토성(靑山里 土城)은 1928년 今西龍이 주변에서 명문벽돌을 수습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규모는 동서 490m, 남북 200m 정도이며, 성내에서는 화분형토기와 기와편, 벽돌편 등이 출토되었고, 주변에서 세형동검도 수습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인근의 북부면 서호리에서 출토된 ??大康四年三月昭明王長造?? 명문벽돌을 근거로 昭明縣의 치소로 보고 있다.
봉산군 지탑리 토성(智塔里 土城)은 700m, 남북 600m 정도이다. 성벽은 상하층으로 뚜렷이 구별되는데, 하층은 막쌓기로 축조한 반면에 상층은 판축해서 쌓았다. 판축층에서 화분형토기, 회색토기, 와당, 벽돌 등을 비롯하여 화천, 오수전 등의 화폐가 출토되었다. 토성 주변에 낙랑군시기의 무덤이 다수 분포하며, 서북쪽 5㎞ 떨어진 대형 벽돌무덤에서 ??帶方太守張撫夷??라는 명문벽돌이 나옴으로써, 대방군의 치소로 비정하고 있다.
영흥군 소라리 토성은 동서 290m, 남북 170m이며, 내부에는 다수의 토기편과 기와편이 산포되어 있다. 토성 내부의 8호 구덩이에서 동촉, 세형동검 검파두식, 쇠도끼(鐵斧), 쇠투겁창(鐵矛), 을(乙)자형 동기, 재갈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토성에서 1㎞ 거리에서 낙랑군시기의 귀틀무덤 2기가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고조선시기의 고대성곽에 대하여(김종혁, 단군과 고조선, 이형구 엮음, 살림터, 1999), 평양지방의 고대토성(남일룡, 조선고고연구 1995-2, 1995), 樂浪文化(中村春樹, 1990), 樂浪土城址の發掘とその遺構-樂浪土城硏究その1(谷豊信, 東京大學文學部 考古學硏究室 硏究紀要 2, 1983), 운성리 유적 발굴보고(리순진, 고고학자료집 4, 사회과학출판사, 1974), 함경남도일대의 고대유적 조사보고(박진욱, 고고학자료집4, 사회과학출판사, 1974), 樂浪郡治址(駒井愛和, 1964), 樂浪土城址の調査(槪報)(原田淑人 外, 昭和12年度古蹟調査報告, 1938), 本年度樂浪土城發掘槪況(高橋勇, 考古學雜誌27-8, 1937), 昭和九年度同十年度土城址の調査(原田淑人 외, 古蹟調査槪報 樂浪遺蹟 昭和十年度, 1936), 帶方郡及び其の遺蹟(小田省吾, 1935), 樂浪郡時代の遺蹟(關野貞 外, 朝鮮彙報, 朝鮮總督府, 1927)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사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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