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나라분지 동남부고분군(奈良奈良盆地東南部古墳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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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일본 나라켄(奈良縣) 동남부 미와야마(三輪山) 주변의 오야마토(大和), 야나기모토(柳本), 마키무쿠(纏向)고분군을 통칭한다. 고분시대 성립기의 거대한 전방후원분은 3세기 중엽에서 4세기 중엽까지 이곳에 축조된다. 마키무쿠고분군은 사쿠라이시 북부의 마키무쿠유적의 남단에 위치한다. 이 고분군은 하시하카(箸墓)고분을 중심으로 이시쓰카(石塚)고분, 호케노야마(ホケノ山)고분 등 9기의 전방후원분으로 구성된다. 하시하카고분은 일본열도에서 최초로 출현한 정형화된 최대의 전방후원분이다. 이 고분은 남쪽으로 흐르는 마키무쿠카와(纏向川)의 자연제방을 이용하여 축조되었다. 전체 길이 약 280m, 후원부 지름 160m, 전방부 길이 130m, 전방부 전면(前面) 너비 147m, 높이 29m이며 주축을 동서 방향으로 두었다. 후원부 5단, 전방부 전면 4단으로 축성되었으나 전방부 측면은 단이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분구에는 너비 10m의 주호(周濠)를 돌리고 그 외곽에 너비 17m의 외제(外堤)를 쌓았다. 주호에는 육교(陸橋)가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매장주체는 발굴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북쪽 요부 부근에서 현무암제의 판석이 확인되어 수혈식석곽으로 추정된다. 분구와 주호에서 오카야마켄(岡山縣)에 기원을 가진 통형의 특수기대·호형(弧形) 하니와편·하지키 등이 출토되었다. 호케노야마고분은 하시하카고분의 북쪽에 위치하는 길이 80m, 후원부 지름 60m, 후원부 높이 8.5m, 전방부 길이 20m, 전방부 높이 3.5m의 전방부가 짧은 전방후원분이다. 매장주체는 길이 1,000㎝, 너비 600㎝, 깊이 110㎝의 묘광 내에 길이 670㎝, 너비 270㎝의 목곽을 설치하고 그 내부에 길이 530㎝, 너비 130㎝의 목관을 안치한 구조이다. 부장품은 화문대동향식신수경(畵文帶同向式神獸鏡) 1면과 23점의 동경 편, 동촉 57점·철촉 87점·소환두대도 1점·살포(撒布) 1점·철사 2점·철착 2점·하지키 등이 출토되었다. 오야마토고분군은 길이 120m의 나카야마오쓰카(中山大塚) 고분을 포함한 19기의 전방후방분과 몇 기의 원분으로 구성된 고분군이다. 야나기모토(柳本)고분군은 길이 130m인 구로즈카(黑塚)고분을 포함한 12기의 전방후원분과 몇 기의 원분으로 구성된 고분군이다. 구로즈카고분에서는 화문대신수경(畵文帶神獸鏡) 1면, 삼각연신수경(三角緣神獸鏡) 33면이 수혈식석곽 내에서 출토되었다. 이와 함께 철도·철검 등의 철제품이 다수 출토되었다. 일본열도 최초의 왕묘는 히미코(卑彌呼)의 무덤으로 비정되고 있는 하시하카고분이다. 그 후 오야마토고분군의 니시토노즈카(西殿塚, 길이 219m), 야나기모토고분군의 안돈야마고분(行燈山古墳, 傳 崇神陵, 길이 242m), 시부타니무카이야마고분(澁谷向山古墳, 傳 景行陵, 길이 300m)과 같은 왕묘가 차례로 조영된다. 그런데 4세기 후반이 되면 야나기모토고분군에 구시야마(櫛山)고분(길이 152m)이 조영되나, 시부타니무카이야마고분을 마지막으로 길이 200m를 넘는 초대형 전방후원분은 조영되지 않게 된다. 이 후 왕묘는 묘역을 이동하여 나라분지 북부인 사키(佐紀)고분군에 조영되기 시작한다. 야요이시대 분구묘의 규모를 초월한 280m의 거대한 전방후원분인 하시하카고분이 일본열도 각지의 토기가 이입된 거대 취락인 마키무쿠(纏向)유적과 같이 나라분지 동남부에 출현하는 것은 이 시기 일본열도의 정치적 중심지가 규슈(九州)에서 기나이(畿內) 지역으로 이동하였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한 3세기 중엽 이후 왕묘가 지속적으로 조영되고 일본열도 전역에 전방후원분이라는 동일한 묘제가 전파·확산되는 점은 왜국(倭國)의 성립을 상징하는 것이다. 일본열도의 정치적 중심지의 성립에 대하여 이제까지 일본학계에서는 삼각연신수경(三角緣神獸鏡)이 위경(魏鏡)인 점에만 주목하여 중국과의 관계만을 중시하여 왔다. 이는 철소재를 한반도 남부로부터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왜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그래서 이 시기 규슈지역에 주로 이입되던 가야지역의 문물이 나라분지 동남부에 출현하여 주목된다. 즉 이 시기 호케노야마고분에 서 목곽, 적석, 목곽의 그을림과 같은 가야지역의 수장묘에서 보이는 묘제와 철제 살포(撒布)의 부장이 확인되고, 또 구로즈카(黑塚)고분에서 ‘Y’자형 유자이기가 출토된 점이 그러하다. 이러한 가야문물의 이입은 일본열도의 정치적 발전이 중국과의 외교단계 성립 외에도 가야지역과의 교섭을 통해 철(鐵) 소재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토대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해 준다.(박천수) |
참고문헌 | 大和前方後圓墳集成(奈良縣立??原考古學硏究所, ??原考古學硏究所硏究成果4, 2001) |
구분 | 용어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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