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간성읍성(高城杆城邑城)
설명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하리 일대가 읍성터에 해당한다. 동쪽으로 바다가 가까이 있고, 북쪽으로는 북천(北川), 남쪽으로는 남천(南川)이 흐르고 있는 사이의 낮은 야산과 구릉지대에 축조되었다. 남동쪽이 가장 낮은 평지이며, 7번국도가 읍성 중심부로 통과하고 있다. 간성읍성은 평산성식 읍성으로 길이는 1.3㎞ 정도이다. 간성읍내의 남북으로 통하는 시장통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의 야산과 구릉지대에 축조되었는데, 현 고성군청이 자리잡고 있는 좌우의 능선과 그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는 읍사무소 뒷편을 휘감고 돌아간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평지에는 내외협축으로 축조하고 능선에는 내탁식으로 석성을 쌓았는데, 일부 잔존한 성벽 상부가 모두 퇴락하여 여장(女墻)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일부 능선구간에서는 하단에만 석축을 하고 상부에 높게 토벽을 만든 곳이 있는데, 이는 능선 아래쪽을 절개하고 석축한 다음 능선 윗쪽은 깎아 내려 성벽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간성읍성은 고려말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문종 원년(1451)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다른 6개 지역 읍성과 함께 개축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당초에 석축 295보(步), 토축 86보였던 것이 문종대에 개축되면서 이보다 다소 늘어난 2,709척으로 확장되었다. 이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석축이며 둘레가 2,565척, 높이 13척, 안에 우물 한 곳이 있다.”라고 기록되었으며, 임진왜란 직전인 선조 24년(1591) 중축(重築)되었다. 그후 18세기 중엽에 편찬된『여지도서』에는 둘레 2,469척, 높이 15척으로 나타나지만 ‘금폐(今廢)’라고 기록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당시에는 이미 군사적인 성곽시설로 유지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유재춘)
참고문헌 고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강릉대학교박물관, 1995), 한국중세축성사연구(유재춘, 경인문화사, 2003)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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