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마갑(馬甲)
설명 마갑은 적의 창이나 화살 등의 공격으로부터 말을 보호하기 위하여 개발된 마구로, 크고 작은 철판 여러 매를 말의 크기와 모양에 맞게 재단·결합하여 만들었다. 안장(鞍裝)이나 행엽(杏葉) 등과 같이 면직 또는 가죽 등으로 만든 유기질제 마갑의 존재도 알려져 있으나 삼국 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마갑은 대부분 전사(戰士)가 무장한 찰갑(札甲)의 철판보다는 훨씬 큰 철판 여러 매를 가죽끈으로 연결하여 만든 철제품이 알려져 있다. 마갑의 구조와 형태에 대해서는 실물 자료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확실치 않으나 고구려의 쌍영총이나 삼실총, 약수리 벽화고분 등에 묘사된 철기(鐵騎) 또는 개마무사(鎧馬武士)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후대의 기록이긴 하지만 중국 송 대(宋代)에 편찬된『무경총요(武經總要)』에 마갑의 각 부분을 계경(鷄頸)·당흉(當胸)·마신갑(馬身甲)·탑후(搭後)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을 참고하면 삼국 시대 마갑 역시 목 부분의 경갑(頸甲), 가슴 부분의 흉갑(胸甲), 배 부분의 복갑(腹甲), 엉덩이 부분의 고갑(尻甲)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삼국 시대에 마갑이 언제부터 사용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고구려 고분벽화 중 안악 3호분의 예로 보아 늦어도 4세기 중엽 무렵에는 방어용 마구로서 마갑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물 자료는 대개 고분의 부장품으로 출토되고 있는데, 고구려의 천추총·오녀산성·마선구 2100호분·태왕릉, 신라의 경산 임당동 G5호분·조영 CⅡ-2호분·경주 쪽샘 지구 C-10호묘·황남동 109호분 3·4곽, 가야의 김해 대성동 11호분, 부산 복천동 35·36호분·학소대 1-3호분과 오륜대 고분군, 합천 옥전 20·28·91·M1호분, 고령 지산동 45·75호분, 함안 말이산 마갑총·6·34호분 등에 출토 예가 있다. 이처럼 삼국 시대의 고구려와 신라, 가야 지역에서마갑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쪽샘 지구 C-10호묘와 함안 마갑총에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 철제 마갑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이 중 마갑총 출토 마갑을 살펴보면, 마갑은 1세트로 북쪽으로 머리를 둔 피장자의 좌우측에 나누어 부장하였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우측의 마갑을 보면 총 길이 226~230㎝, 너비 43~48㎝에 이른다. 이러한 마갑은 피장자의 발치 쪽부터 좁고 긴 소찰小札로 이루어진 목 부분의 경갑, 작은 소찰로 이루어진 가슴 부분의 흉갑, 큰 장방형의 소찰로 이루어진 배 부분의 복갑과 엉덩이 부분의 고갑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고구려의 쌍영총 등에 묘사된 마갑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이러한 마갑과 함께 마주와 종장판주(縱長板胄)·환두대도(環頭大刀)·철모(鐵?)·철촉(鐵鏃) 등의 무기류도 출토되어 마갑총의 주인공이 고구려의 쌍영총과 삼실총 등의 고분벽화에 보이는 개마무사와 같이 전사와 말 모두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하고 환두대도와 장창으로 중무장한 기마전사(騎馬戰士)였음을짐작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마갑은 삼국 시대의 고구려에서 4세기 중엽 무렵 마주와 더불어 중장기병의 필수적인 방어용 마구로 채용되고 이후 한반도 남부의 신라와 가야 지역으로 전래되어 5세기에 들어서 널리 보급·사용되었다. 특히 쪽샘 지구 C-10호묘과 마갑총에서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마갑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마갑과 더불어 삼국과 가야의 마갑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고대 마갑의 형태와 구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류창환)
참고문헌 함안 마갑총(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2002), 한국의 고대갑주(복천박물관, 2010), 부장철기로 본 아라가야의 수장들(류창환, 중앙고고연구 11, 중앙문화재연구원, 2012)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유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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