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사라리고분군(慶州舍羅里古墳群)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사라리마을 서편의 나지막한 구릉 일대에 조영된 원삼국과 삼국시대의 대규모 고분군이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경주에서 영천을 지나 경산과 대구로 가는 주요 교통로로서 경주 서북지역의 관문에 해당된다. 경주 중심지역을 제외하고 가장 대규모인 금척리고분군이 주변에 분포하여 주목된다. 발굴조사로 청동기시대의 장방형주거지 5기, 130호묘를 포함한 원삼국시대의 목관묘 7기,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의 목곽묘 67기, 삼국시대의 적석목곽묘 43기·석곽묘 12기·옹관묘 3기 등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무덤은 유구와 유물의 변화를 통해 볼 때 2세기 전엽에서 7세기 후엽까지 조영된 것으로 대략 일곱 단계를 거치며 변천한 것으로 보인다. 130호묘를 대표로 한 주머니호와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등 전기 와질토기가 출토되는 목관묘 단계(1단계), 18호와 27호를 대표로 하는 유개대부장경호와 노형토기 등 후기 와질토기가 부장된 목곽묘 단계(2단계), 고식 도질토기를 부장한 경주식목곽묘 단계(3단계), 신라 초기토기가 부장되며 몽고발형주와 마주 등이 출토되는 장방형목곽묘가 출현하여 세장방형목곽묘와 공존하는 단계(4단계), 정형화한 신라양식토기가 부장되는 적석목곽묘가 출현하여 목곽묘와 공존하는 단계(5단계), 발달된 신라토기가 부장되는 수혈식석곽묘가 출현하여 적석목곽묘와 공존하는 단계(6단계), 구릉 사면에 석실묘가 조영되는 단계(7단계)가 그것이다. 사라리고분군의 조사성과 중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경주지역 묘제 변화를 한 단위 고분군에서 살필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묘제의 출현과 소멸, 특정 유구에 한정된 갑주류 부장 등의 현상은 경주 중심지와의 관계 속에서 연동해 가는 것으로 파악되며, 사로에서 신라로의 발전과정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은 목관묘단계에는 130호 무덤에서 보듯이 경주권에서 최고라 불릴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점점 쇠락하여 적석목곽묘를 축조하던 단계에는 경주 서부의 건천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중심고분군인 금척리 고분군 축조집단의 하위집단으로 기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하진호)
참고문헌 경주 사라리유적Ⅰ-적석목곽묘·목곽묘-(영남문화재연구원, 1999), 경주 사라리유적Ⅱ-목관묘·주거지-(영남문화재연구원, 2001), 경주 사라리유적Ⅲ-목곽묘·옹관묘-(영남문화재연구원, 2007)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편)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사라리고분군(慶州舍羅里古墳群)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 담당부서 :
  • 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