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아라야유적(新潟 荒屋遺蹟 / Araya Site)
설명 일본 국가 사적. 일본 니가타新潟 현 나가오카長岡 시 가와구치川口 정 아라야荒屋에 위치한다. 나가노長野에서 발원하여, 니가타를 지나서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나노信濃 천은 일본에서 가장 긴 하천으로 알려져 있다. 유적은 이 시나노 천과 그 지류인 우오노魚野 천의 합류 지점을 향하고 있는 단구 위(해발86m)에 자리하는데, 단구의 북쪽 끝에 입지한다. 우오노 천과의 높이 차는 15m이다. 유적이 자리하는 단구면은 갱신세의 가장 늦은 시기에 형성되었다. 화산재 분석에 의해 이 단구의 형성 시기가 아이라-탄자와 화산재姶良Tn火山灰, AT(약 29,000∼26,000년)로 덮인 이후, 아사마-구사쓰浅間-草津, As-K 화산재(약14,000∼13,000년)가 덮이기 이전으로 밝혀졌다. 1957년 처음 발견되었으며, 1958년 세리자와芹沢長介에 의해 제1차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조사에서 좀돌날과 새기개격지, 새기개, 좀돌날몸돌 등 2,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다수 출토된 새기개는 세리자와에 의해 아라야형荒屋型새기개라는 형식명이 붙여졌다. 1988년과 1989년에는 각각 2차, 3차 조사가 도호쿠東北대학에 의해 이루어졌다. 2001년에는 가와구치 교육위원회가 제4차 조사를 실시하였다. 제1차 조사 당시의 지층은 지표 및 경작층(약 50㎝), 롬질모래층(황갈색, 약 40㎝), 모래층의 순서로 퇴적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유물이 포함된 지층은 롬질모래층이었고, 경작층에서도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롬질모래층에는 부분적으로 흑갈색의 띠가 렌즈 모양으로 끼어 있었으며, 그 안에서는 탄화물 등이 발견되었다. 한편, 제2·3차 조사 당시의 지층 분석은 더욱 세분되어, 경작층을 포함하여 13매로 구분되었다. 유물은 지표에서부터 경작층과 점이층의 아래, 곧 위부터 세 번째로 쌓여 있던 3a층에서 확인되었으며, 이 유물포함층은 조사 지역 전체에서 드러났다. 4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 의해, 전체 유적의 범위 약 500㎡ 중, 108㎡가 발굴되었다. 수혈주거 모양 유구 1기와 토갱(구덩이) 23기가 드러났으며, 이러한 유구에서는 다량의 불에 탄 흙과 탄화물이 발견되었다. 또 수혈주거 모양 유구의 중앙에서는 장타원형의 불땐자리도 확인되었다. 유물은 총 100,000여 점에 달하는데, 그 구성은 좀돌날, 좀돌날몸돌, 삭편 등의 좀돌날과 관련된 유물이 6,000여 점, 새기개와 새기개격지 등 새기개와 관련된 유물이 10,000여 점,격지와 조각 및 부스러기가 77,000여 점 등이다. 이 중 좀돌날 및 새기개와 관련된 유물이 전체의 17.8%를 차지하고 있다. 곧, 아라야유적에서는 주로 좀돌날석기와 새기개가 제작되었다. 유물 중 좀돌날몸돌의 제작은 유베쓰湧別 기법에 의한 것과 호로카幌加 기법에 의한 것이 함께 확인되었다. 한편, 석기제작 과정이나 사용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돌 및 부스러기가 다량 출토되는 점, 접합 자료도 확인되는 점 등에 근거하여, 아라야유적은 석기 제작 및 제작한 석기를 이용한 도제작, 그리고 도구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남아있는 유적으로 보고되었다. 탄화물을 시료로 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약 1만 4천 년 전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아라야형새기개는 동북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되는 새기개의 한 형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 늦은 시기의 문화의 확산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김은정)
참고문헌 新潟縣荒屋遺跡における細石刃文化と荒屋型彫刻刃について予報 (芹沢長介, 第四紀研究1-5, 日本第四紀學會, 1959), 荒屋遺跡 (東北 大學大學院文學研究科考古學研究室·川口町教育委員會, 2003)
구분 유적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구석기시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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