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나령리 유적(夫餘 羅嶺里遺蹟)_자기
설명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나령리 215-1·274-2 일원에 위치한다. 은산면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7km 떨어져 있으며 금강의 소하천인 은산천의 상류 지역으로, 오번리와 경계를 이루는 해발 286m 산지에서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가지 능선의 서쪽 사면 하단에 자리한다. 2003년 골프장 조성 사업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백자 가마 2기, 작업장 4기, 폐기장 4기, 수혈 유구 등 조선 후기 백자 생산과 관련된 유구가 집중 확인되었다. 1호 가마는 구조와 형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고 가마 주변에 배치된 작업장과 폐기장이 일괄로 조사되어 조선 후기 백자 생산 양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규모는 길이 2,370cm, 번조실의 너비 190~283cm이다. 구조는 연소실, 7개의 번조실, 연도부로 이루어졌으며, 가마 하단에서 뒤쪽으로 갈수록 가마 너비가 점차 넓어지고 규모도 커진다. 가마 바닥의 경사도는 16 °이다. 각 번조실 사이에는 격벽과 6~8개 내외의 불 창이 시설된 연실식 가마 구조를 이룬다. 가마의 벽체는 할석과 점토를 이용해 구축하였으며, 번조실 사이의 격벽 또한 할석과 점토를 쌓아 구축하였다. 연소실은 긴 장방형 형태로 입구에는 장대석 1매가 가로로 놓여 있다. 연소실 입구로부터 1번조실로 연결되는 격벽까지의 길이가 400cm, 최대 너비 170cm, 높이 100cm이다. 번조실 바닥에는 굵은 모래가 깔려 있으며 원반형의 경사진 도침과 도침으로 활용된 백자 접시가 산발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7번조실은 바닥면 2곳에 할석을 따로 배치한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일종의 불 기둥으로 가마 내부에서의 불 흐름을 조절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7번조실의 후면에는 할석을 이용하여 6열의 고래를 조성하고 고래의 끝 부분에는 3단의 석축을 쌓아 가마 후면 벽체를 이루었다. 이처럼 연도부 뒤쪽 부분을 할석으로 보축하는 구조는 대전 정생동 백자 가마에서도 확인된 바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가마 후미부의 연도 시설 을 보완하고 외부로부터의 공기 역류를 방지하는 등 가마 내부의 전체 열효율을 높이기 위한 구조물로 추정된다. 2호 가마는 1호 가마와 북쪽으로 약 95m 거리를 두고 조성되었는데 대부분 훼손된 상태로 아궁이 일부가 남아 있으며, 번조실과 연도부는 그 흔적만 확인되었다. 잔존 상태로 보아 가마의 대략적인 규모는 길이 2,100cm, 최대 너비 280cm, 바닥 경사도는 16 °이다. 번조실 주변에서는 원형 도침과 철화 백자 명기 병 등이 수습되었다. 가마 주변에서 모두 4기의 작업장이 조사되었다. 작업장은 수비공과 온돌 구조, 원형 수혈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배치와 내부 출토 유물의 양상으로 보아 2호 작업장은 1호 가마, 4호 작업장은 2호 가마와 관련 있는 시설로 판단된다. 수비공은 굴착면을 활용한 토광형을 비롯하여 토광 바닥과 벽면에 판석을 구축한 석곽형이 확인된다.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 장방형 등이 관찰되는데 하나의 작업장 내에서 다양한 형태가 모두 확인된다. 특히 2호 작업장의 경우 온돌 시설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모두 12개의 수비공이 연접하여 배치되었고 수비공 주변에 배수 시설이 돌려져 있다. 한편 폐기장은 모두 4곳이 형성되었는데, 1~3호 폐기장은 1호 가마 주변에 조성되었으며 4호 폐기장은 2호 가마에 인접해 있다. 이들 폐기장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무문의 백자로 기종은 접시, 발, 종지, 항아리, 병 등 일상생활 용기가 주를 이루며 그 밖에 고족 접시, 각병, 명기 등도 확인된다. 1호 가마와 2호 가마는 그릇의 종류, 형태, 제작 방법, 사용한 안료, 가마 내부 재임 시 사용하는 받침 재료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두 가마가 시차를 두고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2호 가마에서는 방사형의 초문을 철화로 장식한 것이 확인된 반면, 1호 가마와 주변 폐기장의 출토 유물 중에는 초화문을 청화로 장식한 것이 발견되었다. 1호 가마 출토 유물의 기형은 대체로 구연이 직립한 경우가 중심을 이루고 두께가 상당하여 대부분 크기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면각을 이루는 그릇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유색은 대체로 회청색을 띠며 그릇의 재임 방법으로는 굵은 모래 받침, 가는 모래 받침, 모래 빚음 받침 등이 확인된다. 청화 백자는 직립한 구연 단에 줄 하나를 긋고 그 아래에 간략화된 초문을 시문하였다. 이러한 장식 특징은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운영된 민간 자기 가마에서 자주 확인되는 양상이며, 청화 장식이 없는 기명에 있어서도 구연이 직립하고 기벽이 둔중한 발과 접시의 기형이 조선 말기 양상을 보여 준다. 반면 2호 가마 출토 유물은 동체 하단부에서 꺾여 사선으로 벌어져 구연이 살짝 외반 하거나 직립하는 형태를 보이며 모래 받침을 이용하여 포개 구이를 하였다. 발과 병의 외면에 방사형의 초문을 철화로 장식한 철화 백자가 제작되었는데 18세기 이후에 운영되는 지방 백자 가마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양상이다. 부여 인근 지역에서 확인되는 철화 백자 생산 가마로는 대전 장안동, 청양 대박리 유적 등이 있으며, 특히 ‘卍’자처럼 생긴 초문을 방사형으로 표현한 철화 장식은 대박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유적은 18~20세기 초 사이에 부여와 인근 청양 일대를 주 소비처로 하는 민수용 지방 백자를 생산했던 가마로 판단된다. (박형순)
참고문헌 부여 나령리 유적(백제문화재연구원, 2009)
구분 유적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생산유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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