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자바이칼의 청동기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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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자바이칼지역은 현 행정구역상으로 바이칼 동편에 위치한 부리야트(Buryat)자치공화국(서 자바이칼지역)과 치타(Chita)주(동 자바이칼지역)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도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누어서 고찰되고 있다. 이 지역 청동기시대의 연구는 일찍이 18세기로 소급될 수 있다. 이 당시 조사되었던 유적은 자바이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판석묘로서, 이후 꾸준히 발굴 조사되어오는 유적이다. 본격적인 연구는 1930~40년대 데베쯔(Debetz), 그랴즈노프(Gryaznov) 등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판석묘에서 발견된 동제품에 근거해 청동기시대를 설정한다. 이후 40년대의 소스놉스키(Sosnovski)에 의해서 최초의 돌널무덤(石棺墓)문화에 대한 기초적인 편년체계 및 형식분류가 진행된다. 전반적인 청동기시대의 구획은 1950년대 디꼬프에 의해서이다. 이후 1970~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리쉰(Grishin), 끼릴로프(Kirillov) 등이 전반적인 청동기시대의 편년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으나 학자간의 이견(異見)이 심한 편이다. 80년대 이후에는 판석묘, 케렉수르(Khereksur) 등의 무덤유적이외에 바이칼 및 여러 강의 하안에 발달한 다층위 유적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된다. 기본적으로 자바이칼의 청동기시대는 크게 초기청동기시대와 판석묘문화로 나뉜다. 초기청동기문화는 현재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기본적인 유물상은 기존의 신석기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확실한 유구에서 출토되지는 않았으나 수습된 카라숙계청동기도 있으며, 판석묘에서도 카라숙계청동기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문화적인 서열을 정하기가 곤란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판석묘문화에서 카라숙계를 따로 ??드보르쯔이문화(Dbortzoi culture)??로 설정한다. 초기청동기시대 문화 : 대표적인 전기유적으로는 스뚜데노에(Studenoe), 우스띠-멘자(Ust-Menza), 알딴(Altan) 2~4층 등이며, 포파나보(Fofanovo) 유적을 제외하고는 주거유적이 주를 이룬다. 대부분 강가에 형성된 다층위의 하구 중에서 얇은 모래층에서 발견되며 집자리(住居址)와 같은 유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인 문화상의 확인은 어렵다. 유물로는 타제석기(打製石器)가 주를 이루지만 석핵(石核)이나 리터치기법 등은 신석기시대보다는 퇴화된 양상을 보이며, 그밖에 세형돌날(細形石刃), 뚜르개, 돌화살촉(石鏃), 괭이, 돌도끼(石斧), 갈돌(石棒), 갈판(?石) 등의 석기가 발견된다. 토기는 대부분 신석기의 전통을 이어서 원저(圓底)나 첨저(尖底)이며 압인격자문(押印格子文)이 주를 이룬다. 단, 시대가 떨어지면서 평저(平底) 및 상이한 토기문양이 출현한다. 서부자바이칼의 초기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무덤유적인 포파노보 유적과 주거유적인 하르가(Kharga)1 유적이 대표적이다. 기본적인 문화상은 글라즈꼬보문화에 속하기 때문에 자바이칼의 지방유형으로 간주한다. 동부자바이칼은 크게 도로닌(Doronin)문화와 오논(Onon)문화로 나뉜다. 이들 문화는 대부분 강가의 다층위 유적 중 사질층에서 발견되며 그 문화층 또한 매우 얇은 편이다. 도로닌문화(Doronin culture)는 대체로 글라즈꼬보문화와 시간적으로 평행하며 토기에서 압인격자문이 출현한다. 이 압인격자문의 출현을 청동기의 시작으로 보는 동시에 주변의 글라즈꼬보나 이므야흐타(Ymyyakhta)문화에서 청동기문화가 전파되었다는 견해와 압인격자문을 이 지역 자체의 문화적 전통(적어도 신석기시대 말기 이후부터)이라고 보는 견해로 나뉜다. 대표적인 유적인 도로닌 4지점에서는 저장구덩이(貯藏穴), 화덕자리(爐址) 등이 발견되었다. 도로닌 유적에서 구체적인 곡물자료는 나오지 않았지만, 석제의 갈돌, 갈판, 괭이, 호미 등이 나온 것에 근거하여 오끌라드니꼬프는 원시적인 농경이 행해졌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기후분석에 의거하면 이 지역의 기후가 도로닌문화 후기로 갈수록 건조하고 한랭해지기 때문에 후기에는 목축이 성행했던 것으로 보지만, 실물 수골(獸骨)자료는 극히 적다. 오논문 화(Onon culture)는 다시 친단기, 부둘란기, 아모골기로 나뉜다. 오논문화는 기본적으로 신석기시대의 유물상을 보이기 때문에 어느 유형부터 청동기시대로 포함시키는 지는 학자간의 논란이 있다. 예컨대 아모골기에 격자압인문, 마연한 표면, 석기 등에서 글라즈꼬보문화와 같은 초기청동기시대 문화의 특징이 보이지만, 청동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부둘란기에서는 자체 청동기제작을 한 증거가 있다고 보고, 그를 청동기시대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각각의 연대는 B.C. 17~13세기, 18~16세기이다. 이상과 같이 자바이칼 초기청동기시대는 기본적인 고고학적 문화상은 신석기시대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며 토기에서는 압인격자문이 출현, 극히 소량이기는 하지만 일부의 동기, 청동기편의 출현, 석기 내에서 가공기술의 변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 편년의 대강은 글라즈꼬보와의 상대편년 및 탄소측정연대에 근거하지만, 전반적으로 연구결과는 극히 미약한 편이다. 후기청동기시대 문화 : 자바이칼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돌널무덤으로서 가장 많은 연구가 축척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묘제의 구성, 발굴유물의 빈약 등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의문으로 남아있다. 판석묘를 기반으로 하는 후기청동기시대 문화는 그 유물상과 묘제상의 특징에 근거해서 ??드보르쯔이문화??와 ??판석묘문화??로 나뉜다. 둘은 대체로 카라숙시기와 따가르문화시기에 해당된다. 드보르쯔이문화(Dbortzoi culture) : 1974년 드보르쯔이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주요 유적으로는 드보르쯔이, 알렉산드로프까, 다라순, 깔리노프까 등이 있다. 무덤의 형태는 판석묘로 이후의 판석묘유형과 거의 유사하다. 4.0~8.0m정도의 타원형(?圓形) 또는 말각방형(抹角方形)의 묘역에는 적석(積石)을 하고 그 가운데 묘광은 2~3m정도의 넓이에 1~1.5m정도의 깊이이며, 묘광안의 충전토에도 괴석(塊石)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시신은 신전장(伸展葬)이며 동향이다. 매장습속상 판석묘문화의 묘제와 구별되는 특징은 무덤내에 예외 없이 양, 말, 소 등을 부장하는 것이다. 그 두골(頭骨)들은 시신의 머리부위와 발 밑에 두는데, 그 평면형태는 자바이칼의 흉노묘장에서 보이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 예컨대 알렉산드로프 1호묘에서는 7마리의 양과 2마리의 말이 부장되었는데, 말의 머리부분은 따로 둔 것도 있다. 이 수골들은 대부분 가축화된 것이다. 유물은 이 지역의 일반적인 판석묘처럼 빈약하거나 일찍이 도굴되었다. 가장 중요한 유물로는 숟가락형동기를 들 수 있다. 손잡이는 주름이 있으며 병단(柄端)은 원형(圓形)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라순 유적에서는 왼쪽가슴 근처에서 2개가 발견되어서 어깨부분을 장식하는데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 동기는 다시 가죽끈으로 묶여있었던 것으로 보아 특별한 장신구의 의미로 보인다. 이외에 연주형장식(聯珠形裝飾), 동물장식의 청동판, 동물장식, 팔찌, 동포(銅泡) 등의 청동유물이 출토되었다. 동포는 타원형으로 뒤에 걸이가 달렸으며, 연주형장식은 삼련(三聯) 또는 그 이상의 것이다. 이외에 원통형의 목걸이장식이나 숫돌(砥石)이 발견되었다. 1997년 치타에서는 지표수습 된 청동투구가 보고되었는데, 이는 소위 ??쿠반양식??으로 샤자덴상층문화에서 발견되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청동유물군은 샤자덴상층문화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토기는 원저(圓底)이며, 높이는 50㎝에 달하는 토기도 있다. 표면에는 타날문(打捺文)이 새겨져있으며, 승문(繩文)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이 문화는 대체로 카라숙문화기와 평행한 연대로 B.C. 12~8세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일부 학자는 그 묘제나 전반적인 유물상이 판석묘문화와 유사하기 때문에 돌널무덤문화의 초기형태 또는 지방적인 형태의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드보르쯔이문화는 학계의 논란이 되는 문제인 판석묘가 카라숙 시기까지 소급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향후 좀더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판석묘문화(板石墓文化) : 자바이칼과 몽고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후기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문화로서, 대표적인 묘제 로 특징적인 형태의 판석묘가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명명되었다. 주거유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지 자바이칼에서 발견된 주거문화층에서 발견된 삼족기(三足器)편에 근거해서 판석묘 문화시기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돌널무덤의 외부구조는 장방형(長方形)의 묘역에 얇은 적석을 하고 그 주위를 돌아가며 판돌을 세워서 묘역을 표시했다. 그 크기는 1.5×1m정도의 소형에서부터 10×6m정도의 대형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판석묘의 존재는 13세기에 몽고를 여행한 중국인의 여행기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러시아인에 의해서는 18세기에 이미 발굴이 행해졌다. 주요 분포지역은 쎌렌가강, 쥐드강, 치꼬이강, 힐까강, 우디강 등의 삼림초원지대 및 스텝지대이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수십 기가 떼를 지어서 분포하며 일렬로 늘어져있다. 평면은 장방형의 형태로 무덤의 경계는 0.5m~2.0m정도의 판석을 세워서 만들었다. 묘역내는 크고 작은 돌로 얇게 적석(積石)을 했으며 그 가운데 부분에 묘광이 위치한다. 묘광의 깊이는 대부분 1.0m 이하이며 동~서 방향으로 장방형의 판석을 설치했다. 돌널의 정부는 넓적한 판석으로 덮였으며, 돌널은 판석 또는 몇 열로 층층이 쌓은 돌덧널(石槨)로 이루어졌다. 묘광내의 매토에도 석괴가 충전되어있다. 장제(葬制)는 기본적으로 신전장이며 동향이다. 가끔씩 시신주위에서 황토를 뿌린 것도 확인된다. 인골 주위에는 말머리를 비롯한 수골의 머리부분이 부장되기도 하며 그 밖의 부장품도 발견된다. 그러나 묘제의 특성상 대부분 발굴고분은 도굴을 당했기 때문에 매우 빈약하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삼족기를 들 수 있다. 청동기는 동도(銅刀) 동검(銅劍), 단추장식, 패식, 다양한 장신구, 동촉(三翼有莖鏃, 兩翼有莖鏃)을 들 수 있다. 판석묘문화의 기원 및 상한연대에 대해서는 현재 통일된 견해가 없으며 카라숙시기(B.C. 2000년기 중~말엽)로 소급 될 것인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하한은 대체로 흉노가 발흥하기 이전인 B.C. 3~2세기로 본다. 또한 판석묘문화의 분포지는 ??사슴돌??의 분포와 거의 부합되기 때문에 두 유물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 둘 사이를 서로 다른 문화로, 아니면 판석묘문화인이 사슴돌을 만든 것으로 보기도 한다. 기원에 대해서는 카라숙계청동기의 발견과 관련하여 서쪽에서의 문화적 충격 내지는 전파가 판석묘를 형성했다는 견해(끼셀료프), 이 지역에서 일찍이 유행했던 문화의 기반하에 발생했다는 견해(데-나바안) 및 만주지역의 돌널무덤전통에서 기원했다는 견해(라리체프) 등이 있으나, 가설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물론, 판석묘라는 묘제로 본다면 그 범위는 자바이칼-만주-티벳이라는 넓은 지역에서 그 상사성(相似性)이 보이지만, 현재 판석묘문화는 자바이칼과 몽고공화국의 동쪽에서만 알려져 있다. 단지 중국 경내에서는 러시아와 인접한 내몽고(內蒙古)의 哈鳥拉 유적에서 발견된 바 있다. 哈烏拉 유적은 찰래노루에서 남서쪽으로 러시아의 치타주와 경계한다. 이 유적은 80여 기의 판돌묘가 분포하나 정식발굴은 극히 일부분에서만 행해졌다. 향후 연구에 따라 중국 내에서 판석묘문화의 범위 및 그 문화상이 확인될 것으로 보이며, 몽고-자바이칼의 판석묘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판석묘문화는 동아시아 청동기시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즉, 우랄지역에서 프리바이칼까지 이르는 지역은 청동기시대에 카라숙?따가르문화 등 시기에 따라 큰 문화적인 변동이 보이는 반면, 자바이칼?동 몽고지역은 비교적 오랜 기간 하나의 묘제를 사용하며 지속된다는 점이다. 판석묘라는 묘제를 볼 때는 돌널무덤을 주로 사용하는 길림성(吉林省)의 시투안샨문화(西團山文化), 요동지방의 개석묘(盖石墓), 돌널무덤, 한국의 고인돌(沈村里型 또는 蓋石式支石墓)과 놀라울 정도의 상사성을 보여준다. 또한 자바이칼 판돌묘문화의 이른 시기유형인 드보르쯔이문화 출토의 유물은 샤자덴상층문화와 강한 유사성을 보인다. 따라서 판석묘문화와 주변의 비슷한 문화의 비교연구는 동북아시아 청동기시대 의 특징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줄 것이다. 판석묘의 매장주체에 대한 형질인류학적 분석결과는 대몽고인종에 속한다는 일관된 결론이 나온다. 머리형태는 단두(短頭), 고두(高頭)이며 두개골의 여러 계측치의 결과에서도 유럽인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 따라서 판석묘문화의 주체는 이 지역 토착 몽고인종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
참고문헌 | Stepnaya polosa Aziaskoy chasti SSSP v skifo-sarmatckoe vremya(Arkheologiya SSSP, 1992), Pamyatnik neolita, bronzovogo I rannego zheleznogo veka lecoctepnogo Zabaykalya(Yu. S. Grishin, 1981) |
구분 | 용어 |
사전명 | 한국고고학사전(2001) |
만족도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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