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바위그늘유적(岩蔭遺蹟)
설명 바위그늘유적은 자연에 존재하고 있는 바위그늘을 이용하여 선사인들이 주거 또는 그 외의 용도로 사용한 유적이다. 바위그늘유적은 동굴유적과 마찬가지로 전세계적으로 구석기시대를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에 다수 확인되고 있다. 바위그늘유적은 넓게 동굴유적에 포함되어 사용되고 있고, 일본의 경우는 동굴유적을 순동굴, 암음, 반동굴로 구별하여 동굴유적에 포함시키고 있다. 바위그늘은 자연적으로 절벽에 그늘이 드리워진 것, 석회암지대에 층리면이나 절벽의 갈라진 틈에 지하수가 침투하여 용해되거나 절벽이 붕괴되거나 풍화작용에 의해 오목하게 형성되어지는 것, 하천이나 바다의 절벽에 파식작용에 의하여 움푹 패여서 형성되기도 한다. 또한 용암이 흐르는 끝 부분의 함몰에 의하여 조그마한 바위그늘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자연적으로 암벽이 붕괴하여 형성된 것과 파식에 의한 바위그늘유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적은 대부분 햇빛이 잘 들어오고 북풍을 막을 수 있는 남쪽으로 트여 있다. 유물은 거의 그늘내부와 그늘의 트인 앞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천장의 낙반과 유수의 유입으로 인한 퇴적토층이 문화층과 층서적으로 양호하게 쌓여 있고, 석회암지대의 바위그늘유적은 석회수에 의한 효과로 유물의 화석화가 이루어져 사용시기의 선후관계와 당시의 기후와 식생, 주거로 이용하였던 계절, 그들이 취했던 동?식물 등을 확인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한국에서 발굴조사된 유적으로는 부산 금곡동, 청도 오진리, 제주 북촌리 유적으로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제주도에서는 바위그늘이 다수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유적에서는 외국의 구석기 중심에 비하여 신석기시대로부터 청동기, 철기, 삼국시대, 최근까지 다양하게 유물이 확인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주 북촌리 유적의 경우, 층위는 총 5개의 층이 확인되는데 최하층에서 신석기시대의 압인점렬문토기, 이중구연토기편, 바로 상층에서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조질무문토기, 마연토기, 심발형의 순수구멍무늬토기, 골아 가리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철기시대,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토기편과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주거의 이용은 퇴적된 층위나 유물의 출토상으로 보아 장기적인 주거보다는 단기간에 사용하였던 유적으로 보이며, 또한 이 시기는 야외에 움집이 널리 사용되어지는 시기로 움집주민들의 주거 외에 묘지나 창고 그리고 제사유적 등의 여러 부수적인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바위그늘유적을 묘지와 제사유적으로 사용한 예가 있고, 제주도에서도 지표조사된 것에서 묘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참고문헌 청도 오진리 암음유적(정징원, 부산대학교박물관, 1994), 日本考古學事典(藤田亮策, 東京堂出版, 1991), 제주도 선사문화와 동굴?바위그늘주거지(이청규?강창화, 제4기지질, 1987),춘천 교동혈거유적과 유물(김원용, 역사학보 20, 역사학회, 1963)
구분 유적
사전명 한국고고학사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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