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陵) 외에 왕실가족의 무덤인 원(園)과 묘(墓)가 있었다. 원(園)은 왕세자, 왕세손과 그 배우자, 왕의 사친(私親; 임금의 친부모)의 무덤이며, 묘(墓)는 왕자와 공주, 옹주, 일반 후궁 및 폐위된 왕들의 무덤을 가리킨다. 원묘제가 확립된 것은 조선 후기로, 그 이전에는 원과 묘를 모두 묘로 불렀다. 원(園)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가 1626년(인조 4) 사친의 무덤을 흥경원(興慶園)과 육경원(毓慶園)으로 추숭(追崇)하면서 창안된 제도이다. 그러나 1627년(인조 5) 정원대원군을 원종으로, 계운궁을 인헌왕후로 추존하고 흥경원을 장릉(章陵)으로 추숭하면서 원제 무덤이 사라졌다.

1753년(영조 29) 영조가 사친인 숙빈 최씨의 사당과 무덤을 육상궁(毓祥宮)과 소령원(昭寧園)으로 격상시키면서 원(園)이 다시 등장하였고, 이후 국가 전례로 제도화되었다. 영조의 사친 추숭은 사친의 공적 지위를 격상시켜 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왕실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고종대에 이르러 사친에 국한된 기존의 원제를 확대해 세자, 세자빈, 세손까지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1870년(고종 7)에 순회세자(순창원), 소현세자(소경원), 소현세자빈(영회원), 의소세손(의령원), 문효세자(효창원)의 묘가 원으로 추봉되었다. 현재 조선왕실의 원은 일제시기 조성된 순헌귀비 엄씨의 영휘원, 화세손 이진의 숭인원 및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의해 조성된 영원, 회인원을 포함해 총 14기이며, 묘는 64기에 이른다.

순창원 능침

순창원 능침

순강원 능침

순강원 능침

순강원 전경

순강원 전경

순강원 우측 동자석

순강원 우측 동자석

소경원 능침

소경원 능침

영회원 능침

영회원 능침

소령원 능침

소령원 능침

소령원 전경

소령원 전경

소령원 신도비

소령원 신도비

수경원 능침

수경원 능침

수길원 능침

수길원 능침

의령원 능침

의령원 능침

효창원 능침

효창원 능침

휘경원 능침

휘경원 능침

휘경원 전경

휘경원 전경

영휘원 능침

영휘원 능침

숭인원 능침

숭인원 능침

영원

영원

연산군묘

연산군묘

광해군묘

광해군묘

회묘

회묘

성묘

성묘

참고문헌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릉, 왕실의 영혼을 담다』, 2016.
김이순, 「조선왕실 무덤, 園의 창안과 전개」, 『미술사논단』 41, 2015.12.

조선왕릉 원(園) 현황

조선왕릉 원(園) 현황 안내표
연번 지정종목 원호 주인공/생몰년 조성연대 가계
1 사적 순창원順昌園 순회세자 順懷世子 1551~1563 공회빈 윤씨恭懷嬪 尹氏 ?~1592 1563년 순회묘
1870년 순창원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장자
2 사적 순강원順康園 인빈 김씨 仁嬪 金氏 1555~1613 1775년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후궁
3 사적 영회원永懷園 민회빈 강씨 閔懷嬪 姜氏?∼1646 1646년 조성
1718년 민회묘
1870년 영회원
제 16대 인조의 장자 소현세자의 빈(嬪)
4 사적 소경원昭慶園 소현세자 昭顯世子 1612∼1645 1645년 소현묘
1870년 소경원
제 16대 인조의 장자 소현세자
5 사적 소령원昭寧園 숙빈 최씨 淑嬪 崔氏 1670~1718 1718년 숙빈묘
1744년 소령묘
1753년 소령원
조선의 19대 왕 숙종의 후궁, 21대 왕 영조의 생모
6 사적 수길원綏吉園 정빈 이씨 靖嬪 李氏 1694~1721 1721년 조성
1778년 수길원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후궁, 효장세자[진종]의 사친
7 사적 수경원綏慶園 영빈 이씨 暎嬪 李氏 1696~1764년 1764년 조성
1765년 의열묘
1788년 선희묘
1899년 수경원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후궁, 사도세자의 생모
8 사적 효창원孝昌園 문효세자 文孝世子 1782~1786 1786년 효창묘
1870년 효창원
조선 제22대왕 정조와 의빈 성씨(宜嬪成氏) 소생
9 사적 휘경원徽慶園 수빈 박씨 綏嬪 朴氏 1770~1882 1823년 조성 조선 22대 정조의 후궁, 23대 순조의 사친
10 사적 의령원懿寧園 의소세손 懿昭世孫 1750~1752 1752년 의소묘
1871년 의령원
사도세자의 장자
11 사적 영휘원永徽園 순헌황귀비 엄씨 純獻皇貴妃 嚴氏 1854∼1911 1911년 조성 조선 고종의 계비(繼妃).
12 사적 숭인원崇仁園 원손 이진 李晉 元孫 李晉 1921~1922 1922년 조성 고종황제의 4째 아들 의민황태자의 장자
13 사적 영원英園 영왕 이은 英王 李垠 1897~1970 이방자 李方子 1901~1989 1970년 조성 고종황제의 7째 아들
14 사적 회인원懷仁園 이구 李玖 1931~2005 2005년 조성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의 둘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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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묘 현황표

조선왕실 묘 현황 안내표
연번 지정종목 묘호 생몰년
(조성연대)
가계 비고
1 사적 준경묘濬慶墓 (1899년) 태조 5대조
2 사적 영경묘永慶墓 (1899년) 태조 5대조모
3 사적 회묘懷墓 ?∼1482년 연산군, 사친 윤씨
4 사적 연산군묘燕山君墓 (1506년) 연산군, 폐비 신씨
5 사적 성묘成墓 1553~1577년 광해군, 사친 공빈 김씨
6 사적 광해군묘光海君墓 (1643년) 광해군, 폐비 유씨
7 사적 대빈묘大嬪墓 1659~1701년 경종, 사친 장씨
8 사적 의친왕묘義親王墓 1877~1955년 고종, 차남
9 사적 정소공주묘貞昭公主墓 1412~1424년 세종, 소헌왕후 장녀
10 사적 정종묘鄭悰墓 ?~1461년 문종 부마
11 사적 경혜공주묘敬惠公主墓 1436~1473년 문종, 현덕왕후 장녀
12 사적 인성대군묘仁城大君墓 1461~1463년 예종, 장순왕후 장남
13 사적 인순공주묘仁順公主墓 1542~1545년 중종, 문정황후 4녀
14 사적 정명공주묘貞明公主墓 1603~1685년 선조, 인목대비 장녀
15 사적 의창군묘義昌君墓 1589~1645년 선조, 인빈김씨 8남
16 사적 숙신공주묘淑愼公主墓 1635~1637년 효종, 인선왕후 장녀
17 사적 경선군묘慶善君墓 (1647년) 소현세자, 장남
18 사적 경완군묘慶完君墓 (1647년) 소현세자, 차남
19 사적 명선공주묘明善公主墓 1659~1673년 현종, 명성왕후 장녀
20 사적 명혜공주묘明惠公主墓 1665~1673년 현종, 명성왕후 차녀
21 사적 화억옹주묘和億翁主墓 1717~1718년 영조, 정빈 이씨 장녀
22 사적 왕녀묘王女墓 미상 영조, 영빈 이씨
23 사적 왕녀묘王女墓 미상 영조, 영빈 이씨
24 사적 영온옹주묘永溫翁主墓 1817~1829년 순조, 숙의 박씨 1녀
25 사적 순조차왕자묘純祖次王子墓 1820년 순조, 순원숙황후 차남
26 사적 왕녀묘王女墓 미상 헌종, 숙의 김씨 1녀
27 사적 철종원자묘哲宗元子墓 1858~1589년 철종, 철인장황후 장남
28 사적 고종원자묘高宗元子墓 1871년 고종, 명성태황후 장남 묘에 태실도 같이 묻어 있음
29 사적 고종장공주묘高宗長公主墓 1871년 고종, 명성태황후 1녀 묘에 태실도 같이 묻어 있음
30 사적 대군묘大君墓 1875년 고종, 명성태황후 3남
31 사적 고종사왕자묘高宗四王子墓 1878년 고종, 명성태황후 4남 묘에 태실도 같이 묻어 있음
32 사적 고종장옹주묘高宗長翁主墓 미상 고종, 내안당 귀인 이씨 장녀
33 사적 덕혜옹주묘德惠翁主墓 1912~1989년 고종, 복녕당 양씨 3녀
34 사적 왕자묘王子墓 1914~1915년 고종, 보현당 귀인 정씨 장남
35 사적 왕자묘王子墓 1916년 고종, 내안당 귀인 이씨 장남
36 사적 왕녀묘王女墓 미상 고종, 영보당 귀인 이씨 장녀
37 사적 명빈묘明嬪墓 (1479년) 태종 후궁 명빈 김씨
38 사적 경빈이씨묘慶嬪李氏墓 미상 명종 후궁 경빈 이씨
39 사적 숙의나씨묘淑儀羅氏墓 미상 인조 후궁 숙의 나씨
40 사적 숙원장씨묘淑媛張氏墓 미상 인조 후궁 숙원 장씨
41 사적 안빈묘安嬪墓 (1696년) 효종 후궁 안빈 이씨
42 사적 영빈묘寧嬪墓 (1735년) 숙종 후궁 영빈 김씨
43 사적 소의유씨묘昭儀劉氏墓 ?~1688년 숙종 후궁 소의 유씨
44 사적 귀인김씨묘貴人金氏墓 1690~1735년 숙종 후궁 귀인 김씨
45 사적 의빈성씨묘宜嬪成氏墓 1753~1786년 정조 후궁 의빈 성씨
46 사적 화빈윤씨묘和嬪尹氏墓 1765~1824년 정조 후궁 화빈 윤씨
47 사적 원빈홍씨묘元嬪洪氏墓 1766~1779년 정조 후궁 원빈 홍씨
48 사적 숙의박씨묘淑儀朴氏墓 미상 순조 후궁 숙위 박씨
49 사적 숙의김씨묘淑儀金氏墓 1813~1895년 헌종 후궁 숙의 김씨
50 사적 경빈김씨묘慶嬪金氏墓 1832~1907년 헌종 후궁 경빈 김씨
51 사적 숙의범씨묘淑儀范氏墓 1838~1883년 철종 후궁 숙의 범씨
52 사적 숙의방씨묘淑儀方氏墓 미상 철종 후궁 숙의 방씨
53 사적 귀인박씨묘貴人朴氏墓 1827~1889 철종 후궁 귀인 박씨
54 사적 귀인조씨묘貴人趙氏墓 1842~1865년 철종 후궁 귀인 조씨
55 사적 귀인이씨묘貴人李氏墓 1843~1929년 고종 후궁 귀인 이씨
56 사적 귀인이씨묘貴人李氏墓 1847~1914년 고종 후궁 귀인 이씨
57 사적 귀인양씨묘貴人梁氏墓 1882~1929년 고종 후궁 귀인 양씨
58 사적 정화당김씨묘貞和堂金氏墓 미상 고종 후궁 귀인 김씨
59 사적 보현당정씨묘寶賢堂鄭氏墓 1882~1943년 고종 후궁 귀인 정씨
60 사적 광화당귀인이씨묘光華堂貴人李氏墓 1887~1970년 고종 후궁 이씨
61 사적 삼축당김씨묘三祝堂金氏墓 1890~1972년 고종 후궁 김씨
62 사적 귀인장씨묘貴人張氏墓 (2009년) 고종 후궁 귀인 장씨
63 사적 수관당정씨묘修觀堂鄭氏墓 미상 의친왕 후실
64 사적 수인당이씨묘壽仁當李氏墓 미상 의친왕 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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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소령원(昭寧園)

조선왕실 원(園)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관련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 것이 숙빈최씨의 소령원(昭寧園)이다. 숙빈최씨는 최효원(崔孝元)의 딸로 7세에 입궁하여 숙종의 후궁이 되어 영조를 낳았다. 1718년 49세로 창의동(彰義洞) 사제(私第)에서 별세한 후, 같은 해 5월 12일 경기도 양주(楊州) 고령동(高嶺洞) 옹장리(瓮場里)에 예장하고 숙빈묘(淑嬪墓)라 하였다.

영조는 왕위에 오르자 1725년 숙빈묘 입구에 신도비를 세웠으며 1744년 묘호(廟號)를 육상(毓祥), 묘호(墓號)를 소령(昭寧)으로 정하는 등 모친에 대한 위상 격상에 힘쓰기 시작했다. 1753년 육상묘를 육상궁(毓祥宮)으로, 소령묘를 소령원(昭寧園)으로 추숭하면서 조선후기 궁원제(宮園制)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소령원은 원(園)으로 격상되면서 걸맞게 대대적으로 단장되었다. 그 결과 석양, 석마, 정자각, 비석, 비각, 신도비각, 홍살문, 수라간, 수복방을 새로 설치하여 왕릉급에 버금가는 체제를 갖추었다. 특히 능상에 왕릉이나 다른 원묘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배례석이 있고, 4m에 가까운 육중한 신도비가 조성된 것에서 소령원의 위상과 모친에 대한 영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다.

영조와 소령원
영조와 소령원

회묘와 성묘

회묘(懷墓)

회묘는 조선 제9대 성종의 계비(繼妃)이자 연산군 모친인 폐비 윤씨의 묘이다.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조성되었으나, 1960년대 지금의 서삼릉 지역으로 이장되었다.

1482년 폐비 윤씨가 사사된 후 처음에는 경기도 장단군에 민묘로 조성되었으나, 연산군이 등극하여 회묘를 ‘회릉(懷陵)’으로 추숭하고 석물도 능제에 맞춰 다시 마련하였다. 그러나 1506년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되면서 모친도 폐위되어 능호가 다시 ‘회묘(懷墓)’로 강봉되었다. 그러나 능제형식은 유지되어 건축물이나 석물은 남게 되었다. 이후 1969년 10월 25일 경희대학교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서삼릉 지역으로 이장되었다.

회묘가 있었던 회기동은 본래 회릉동(懷陵洞)이었는데, 회묘로 격하되면서 회묘동(懷墓洞)으로 바뀌었다. 훗날 회(懷)라는 글자가 어렵다 하여 회(回)로 바꾸고, 묘(墓)라는 글자가 좋지 않은 글자라 하여 기(基)자로 바꾸어 오늘날의 회기(回基)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회묘(懷墓)

성묘(成墓)

성묘는 조선의 제 14대 왕 선조의 후궁이자 광해군 모친 공빈 김씨(恭嬪 金氏, 1553~1577)의 묘이다. 영의정 김희철의 딸로, 광해군을 낳아 정1품 빈(嬪)에 책봉되었으나, 2년 만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610년 광해군이 왕위에 올라 공빈 김씨를 추존하고 능호를 성릉(成陵)이라 하였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김씨의 시호와 능호가 박탈되어 ‘성묘’로 격하되었다. 1630년 5월 21일 인조는 공빈의 묘소에 법도에 어긋나게 세운 석물을 헐도록 명하였으나, 현재 난간석과 문무석인, 장명등, 망주석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성묘와 멀지 않은 곳에 광해군묘가 있다.

성묘(成墓)

연산군과 광해군의 묘

연산군 묘(燕山君墓)

조선의 제10대 왕인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뒤 1506년 유배지인 강화군 교동에서 죽자, 왕자군(王子君)의 예로 유배지에 묘소를 조성하였다. 이후 1512년(중종 7) 폐비 신씨(愼氏)가 연산군을 이장할 것을 진언해, 현재의 자리인 도봉구 방화동에 천장하였다. 1537년(중종 32) 연산군부인 신씨가 사망하자 묘를 연산군묘의 오른편에 쌍분 형태로 조성하였다. 현재 연산군묘는 대군(大君)의 예로 장례하여 곡장, 비석, 상석, 장명등, 향로석, 문석인 2쌍, 제실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병풍석과 석마, 석양, 석호는 설치되지 않았다.

연산군 묘(燕山君墓)

광해군 묘

조선의 제15대 왕인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뒤 1641년(인조19) 7월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사망하자, 조정에서는 광해군을 연산군의 전례에 따라 왕자군(王子君)의 예로 장례 지냈다. 장례 후 광해군의 상구(喪柩)를 제주에서 운구해와, 같은 해 9월 현재의 위치에 안장하였다(『승정원일기』). 광해군묘는 연산군묘와 동일하게 대군묘(大君墓)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봉분은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류씨의 쌍분 형태이며, 곡장, 비석, 상석, 향로석, 장명등, 문석인이 설치되었다.

광해군 묘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원 · 묘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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