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왕릉

무열왕릉

성덕왕릉

성덕왕릉 문인석 정면
상.png)
성덕왕릉 십이지신석 중 술(개)상

원성왕릉 봉분
신라왕릉의 분포와 입지
신라왕릉은 1대 왕 박혁거세부터 56대 경순왕까지 56명의 왕이 재위했으나 현재 31개소 36기의 능묘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일부는 주인공이 확인되었지만 일부는 왕릉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의 능이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경상북도 경주시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신라왕릉은 시기별로 입지형식에 있어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크게 3시기로 구분된다. 제 1기는 경주 분지 내에 왕릉이 축조되는 시기로, 1대 혁거세서간에서 22대 지증마립간의 상고기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제 2기는 경주 분지에서 주변 산록으로 옮겨 축조되는 시기로, 23대 법흥왕에서 36대 혜공왕까지 중고기와 중대를 합한 시기가 이 시기로 분류된다. 이 시기에는 주로 둘 이상 군집을 형성하며, 풍수지리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에 위치하였다. 제 3기는 2기보다 더욱 왕성에서 멀리 떨어진 경주 분지의 하천유역에 위치하며, 풍수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에 단독분의 형태로 조영된 특징을 보인다.
신라왕릉의 구조와 형식
초기 신라왕릉은 목곽묘 내부에 부장된 유물을 제외하고, 외관상 입지나 원형토분 외에 시설물이나 의물과 같은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 29대 무열왕릉(660년)에 처음으로 능비를 세우고 호석에 받침석을 괴는 등의 변화를 보이며, 이후 통일기에 이르러 고구려와 당 능묘제도의 영향으로 능묘제도 전반에 변화가 나타난다. 31대 신문왕릉(692년경)에서는 여러 단으로 호석을 쌓아올리고 호석을 보호하는 사다리꼴 받침석을 설치하는 등 무열왕릉 형식에서 진일보한 호석 형식이 나타난다. 이후 33대 성덕왕릉(737년경)에서 탱석과 장판석 등으로 호석의 구조가 보강되고, 석인과 석사자 등의 석물이 장식되는 등 신라왕릉제도의 전형이 마련된다. 35대 경덕왕릉(765년경)과 38대 원성왕릉(798년경)에 이르면 환조한 후에 봉분 주변에 추가로 배치되던 십이지신상이 호석 탱주에 부조로 조성되기 시작하며, 38대 원성왕릉에서는 호인상과 팔각의 화표석이 추가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석물제도는 42대 흥덕왕릉(836년경)까지 지속된 후 9세기 중엽부터 신라의 정치적 몰락과 함께 쇠퇴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와 같은 발전과정을 통해 대체로 통일신라시대 전후에 완비된 신라의 능묘제는 고려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신라왕릉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위치한 신라 제 29대 태종무열왕의 능이다. 무열왕릉은 능역에 세워진 능비의 이수 앞부분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전서체의 제액(題額)이 남아있어 신라능묘 가운데 주인공이 정확한 유일한 능이라 할 수 있다. 왕릉은 왕경범위 바깥에 조성되어 제 2기의 능에 해당되며, 능역 앞에 김인문묘와 김양묘로 알려진 배장분이 2기가 배치되어 배장분이 설치되던 당 능묘제도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무열왕릉은 봉분을 두른 호석에 받침석 역할을 하는 자연괴석을 추가해 이전 왕릉의 호석 구조에서 한 단계 발전한 것과 함께, 능전에 남아있는 상석과 능비로 석물과 제례공간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이전 왕릉과 구분되는 획기적인 형식의 능이라 할 수 있다.
경북 경주시 조양동에 있는 33대 성덕왕의 능이다. 성덕왕릉에 이르면 신문왕릉에서 볼 수 있었던 5단의 호석은 여러 매의 판석으로, 호석 위를 덮었던 여러 개의 갑석은 호형의 장대석으로 대치되어 호석구조에 발전을 이룬다. 판석 사이에는 호석의 붕괴를 막기 위한 탱석이 등장하지만, 이전시기에 호석의 붕괴를 막기 위한 구조물이었던 받침석이 여전히 등장해 호석구조 발전상에 과도기적 단계라 할 수 있다.
성덕왕릉에는 상석 외에 석인상, 석사자상, 십이지신상의 석물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이 중 십이지신상은 호석의 탱석에 부조된 것이 아니라 별도의 상으로 조각되어 호석 둘레에 배설되었다. 별도로 조각된 십이지신상과 관련해 성덕왕의 둘째아들인 35대 경덕왕대에 이르러 성덕왕릉에 능비를 추가로 세우면서(754년) 능역을 보강하면서 십이지신상을 추가로 배설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후에 세워지는 경덕왕릉의 능에서부터 십이지신상은 탱석에 부조로 조각된다. 십이지신상을 봉토 밖에 세우는 예는 동아시아에 유래가 없어, 신라왕릉만의 독창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신라 38대 원성왕의 능으로 추정하고 있다. 봉토 아랫부분의 호석에는 십이지신상이 얕게 부조되어 있으며, 십이지신상은 무복을 입고 무기를 든 형태이다. 괘릉의 십이지신상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괘릉은 능 입구에 세워진 석상으로도 유명한데, 능의 사방에 세워지던 석사자가 석상 아래의 신도 양측에 배설되며, 그 아래로 문석인과 무석인, 화표석이 1쌍씩 차례로 배치되었다. 이 중 무석인상은 큰 이목구비와 곱슬머리, 턱 전제를 뒤덮은 턱수염 등 문석인과 대비되는 강한 서역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호인상의 등장은 당시 신라의 국제적인 교역관계와 관련이 있어 주목된다.
참고문헌
이근직, 『신라왕릉연구』, 학연문화사, 2012.
경주시·한국전통문화대학교 외, 『신라왕릉. Ⅰ~Ⅲ. 현황조사보고서』, 2013.
신라왕릉의 분포현황
분포지구 | 해당왕릉 | |
---|---|---|
남산지구 | 서남산 지구 | 오릉, 지마왕릉, 일성왕릉, 경애왕릉, 배동삼릉 |
동남산 지구 | 헌강왕릉, 정강왕릉 | |
대릉원 지구 | 미추왕릉, 내물왕릉 | |
낭산 · 토함산 지구 | 선덕왕릉, 신문왕릉, 효공왕릉, 신무왕릉, 효소왕릉, 선덕왕릉, 진평왕릉 | |
소금강산 지구 | 탈해왕릉, 헌덕왕릉 | |
선도산 지구 | 무열왕릉, 법흥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 | |
금설산 지구 | 傳민애왕릉, 희강왕릉, 경덕왕릉 | |
기타 지역 | 진덕여왕릉, 원성왕릉, 흥덕왕릉, 문무대왕릉 |
경주시, 『신라왕릉현황조사보고서Ⅲ』 , 2013
신라왕릉의 시대구분
시대 | 국가유산명 | 왕릉명 | 왕명(재위)/피장자(생몰년) | 지역 |
---|---|---|---|---|
상고기 (上古期) |
사적 경주오릉 | 박혁거세릉 | 제1대혁거세서거간 (BC57~4)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사적 경주오릉 | 알영왕비릉 | 제1대혁거세왕후알영왕비 (BC53~?)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
사적 경주오릉 | 남해왕릉 | 제2대남해차차웅 (4~24)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
사적 경주오릉 | 유리왕릉 | 제3대유리이사금 (24~57)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
사적 경주탈해왕릉 | 탈해왕릉 | 제4대탈해이사금 (57~80) | 소금강산 지구 | |
사적 경주오릉 | 파사왕릉 | 제5대파사이사금 (80~112)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
사적 경주지마왕릉 | 지마왕릉 | 제6대지마이사금 (112~134)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
사적 경주일성왕릉 | 일성왕릉 | 제7대일성이사금 (134~154)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
사적 경주배동삼릉 | 알다라왕릉 | 제8대아달라이사금 (154~184)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
사적 경주미추왕릉 | 미추왕릉 | 제13대미추이사금 (262~284) | 대릉원 지구 | |
사적 경주내물왕릉 | 내물왕릉 | 제17대내물이사금 (256~402) | 대릉원 지구 | |
중고기 (中古期) |
사적 경주법흥왕릉 | 법흥왕릉 | 제23대법흥왕 (514~540) | 선도산 지구 |
사적 경주진흥왕릉 | 진흥왕릉 | 제24대진흥왕 (540~576) | 선도산 지구 | |
사적 경주진지왕릉 | 진지왕릉 | 제25대진지왕 (576~579) | 선도산 지구 | |
사적 경주진평왕릉 | 진평왕릉 | 제26대진평왕 (579~632) | 낭산·토함산지구 | |
사적 경주선덕여왕릉 | 선덕여왕릉 | 제27대선덕왕(여왕) (632~647) | 낭산·토함산지구 | |
사적 경주진덕여왕릉 | 진덕여왕릉 | 제28대진덕여왕 (647~654) | 기타지역 | |
중대 (中代) |
사적 경주무열왕릉 | 무열왕릉 | 제29대무열왕 (654~661) | 선도산 지구 |
사적 경주문무대왕릉 | 문무대왕릉 | 제30대문무왕 (661~681) | 기타지역 | |
사적 경주신문왕릉 | 신문왕릉 | 제31대신문왕 (681~692) | 낭산·토함산지구 | |
사적 경주효소왕릉 | 효소왕릉 | 제32대효소왕 (692~702) | 낭산·토함산지구 | |
사적 경주성덕왕릉 | 성덕왕릉 | 제33대성덕왕 (701~737) | 낭산·토함산지구 | |
사적 경주경덕왕릉 | 경덕왕릉 | 제35대경덕왕 (742~765) | 금실산 지구 | |
하대 (下代) |
사적 경주원성왕릉 | 원성왕릉(괘릉) | 제38대원성왕 (785~798) | 기타지역 |
사적 경주헌덕왕릉 | 헌덕왕릉 | 제41대헌덕왕 (809~836) | 소금강산 지구 | |
사적 경주흥덕왕릉 | 흥덕왕릉 | 제42대흥덕왕 (826~836) | 기타지역 | |
사적 경주희강왕릉 | 희강왕릉 | 제43대희강왕 (836~838) | 금실산 지구 | |
사적 경주전민애왕릉 | 傳민애왕릉 | 제44대민애왕 (838~839) | 금실산 지구 | |
사적 경주신무왕릉 | 신무왕릉 | 제45대신무왕 (839~839) | 낭산·토함산지구 | |
사적 경주문성왕릉 | 문성왕릉 | 제46대문성왕 (839~857) | 선도산 지구 | |
사적 경주헌안왕릉 | 헌안왕릉 | 제47대헌안왕 (857~861) | 선도산 지구 | |
사적 경주헌강왕릉 | 헌강왕릉 | 제49대헌강왕 (875~886) | 남산지구 (동남산지구) |
|
사적 경주정강왕릉 | 정강왕릉 | 제50대정강왕 (886~887) | 남산지구 (동남산지구) |
|
사적 경주효공왕릉 | 효공왕릉 | 제52대효공왕 (897~912) | 낭산·토함산지구 | |
사적 경주배동삼릉 | 신덕왕릉 | 제53대신덕왕 (912~917)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
사적 경주배동삼릉 | 경명왕릉 | 제54대경명왕 (917~924)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
사적 경주경애왕릉 | 경애왕릉 | 제55대경애왕 (924~927) | 남산지구 (서남산지구) |
|
사적 연천경순왕릉 | 경순왕릉 | 제56대경순왕 (927~935) | 기타지역 |
경주시, 『신라왕릉현황조사보고서Ⅲ』 , 2013
- 미술문화유산연구실
- 문의 : 042-860-9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