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집묘표(金集墓表)
- 시대
- 조선
- 연대
- 1662년(현종 3)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높이 102.0cm, 너비 64.0cm, 두께 25.0cm
- 소재지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36-3
- 출토지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36-3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이유태(李惟泰) / 미상 / 윤선거(尹宣擧)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1662년(현종 3)에 세워진 김집(金集)의 묘표이다. 찬자는 조선 숙종 때 문신 이유태(李惟泰, 1607~1684)이며, 서자는 성리학의 대가였으며, 예론에도 정통했던 조선 중기의 학자 윤선거(尹宣擧, 1610~1669)이다. 김집(1574~1650)의 자는 사강, 호는 신독재, 본관은 광산으로 김장생의 아들이다. 18세에 진사가 되고 1610년(광해군 2)에 참봉이 되었다가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로 은퇴하였다가 효종이 즉위하자 김상헌 등과 함께 등용되어 이조판서에 이르고 효종과 함께 북벌을 계획했다. 이때 실각한 김자점이 청나라에 이를 밀고함으로써 야기된 청나라의 문책으로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사임하였다. 그 후 대사헌 좌찬성을 지내고 판중추부사로 죽었다. 김집은 학문을 가정에서 습득했는데, 그 연원은 문성공 이이(文成公李珥)로부터 나와서 문성공의 실마리를 이어받고 성세를 만나 똑같이 덕망 있는 사람들과 함께 헤쳐 나가 성상의 뜻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이루지 못하여 거듭 뜻있는 선비들의 아픔이 되고 말았다. 그는 아버지의 학문을 계승하고 더욱 연구하여 예학의 체계를 세웠다. 1656년(효종 7)에 죽었는데, 임금은 특별히 예관에게 명하여 장례를 치르게 하고 문경이라는 시호를 내려 주었다. 그로부터 6년 뒤 1661년에 현종이 선생과 김상헌을 효종의 묘정에 배향했다. 문집에 『신독재유고』, 편서에 『의례문해속(疑禮問解續)』이 있다. 김집의 묘는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구고운 마을에 있으며, 신도비도 묘소에 있다.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이 찬하고 동춘당 송준길이 썼다. 묘표의 전반부에는 김집이 세상을 등지게 된 일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으며, 이후에는 김집의 문재(文才)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묘표의 제일 끝에 그의 생애, 이력, 학문의 본말, 후손 등은 비장(碑狀)에 상세하게 있으므로 생략한다고 하였다.
판독문/해석문
| 판독문 | 김용태 | ||
| 해석문 | 전혜경 |
참고문헌
| 기타 | 2007 | (web) 논산시청 홈페이지 |
| 단행본 | 1988 | 충청남도 교육위원회, 『우리고장 충남-고적과 지명편-』 상권, 1988 |
- 담당부서 : 미술문화유산연구실
- 문의 : 042-860-91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