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유묘비(金大有墓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556년(명종 11)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미상
- 소재지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금곡산
- 출토지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금곡산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조식(曺植)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1556년(명종 11)에 세워진 김대유(金大有)의 묘비이다. 비문은 조선 전기 성리학자로 영남학파의 거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이 썼다. 김대유(1479∼1551)의 자는 천우(天佑), 호는 삼족당(三足堂)이며 본관은 심해이다. 아버지는 제학 준손(駿孫)이고, 어머니는 사도시정(司䆃寺正) 고태익(高台翼)의 딸이며,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조카이다. 조광조(趙光祖)·조식 등과 친교를 맺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로 김일손이 화를 당하였을 때 아버지와 함께 호남에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때 풀려났다. 1518년(중종 13) 천거되어 전생서직장이 되었고 1519년 현량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전적·호조좌랑·정언·칠원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기묘사화로 현량과가 혁파되자, 과거합격을 취소하고 관직이 삭탈되었다. 그 후 운문산에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비문의 내용은 그리 길지 않은데 가계도와 관직생활, 그의 풍모에 대한 조식의 칭송으로 이루어졌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이기영 | ||
| 판독문 | 이기영 |
참고문헌
| 기타 | 2007 | (we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
| 기타 | 2007 | (web)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종합정보서비스 |
| 논문 | 2003 | 「16세기초 청도지역 사림의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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