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설단비(鄭道傳設壇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882년(고종 19)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전체높이 246.0 비신높이 128.0 너비 53.0 두께 23.0
- 소재지
-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202
- 출토지
-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정봉시(鄭鳳時) / 미상 / 정재훈(鄭在勳)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이 비는 1882년(고종 19) 경기도 평택에 건립된 정도전설단비(鄭道傳設壇碑)로 정봉시(鄭鳳時)가 비문을 지었고, 정재훈(鄭在勳)가 글씨를 썼다. 정도전(鄭道傳 : 1337~1398)의 본관은 봉화(奉化)이고, 자는 종지(宗之)이며, 호는 삼봉(三峰)이다. 26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충주사록, 전교시주부, 성균박사, 예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383년 동북면도지휘사(都指揮使) 이성계(李成桂)의 막료가 되었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 정몽주(鄭夢周)의 서장관이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이성계의 우익으로서 조준(趙浚)과 함께 전제개혁론을 주장, 1389년(창왕 1)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승진하였고 창왕(昌王)을 폐위하고 공양왕(恭讓王)을 옹립하는데 적극 가담하여 봉화현충의군(奉化縣忠義君)에 책록되었다. 그 해 조민수(曺敏修) 등 구세력을 몰아내고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과전법(科田法)을 실시하게 함으로써 조선 개국의 정치·경제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듬해 이성계가 군사권을 장악하여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설치하자 우군총제사(右軍摠制使)가 되고 이어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재직 중, 구세력의 역습으로 탄핵을 받아 관직을 박탈당하고 봉화로 유배되었다. 1392년 한때 풀렸으나 정몽주의 탄핵으로 투옥되었고 정몽주가 살해된 뒤 풀려나와 조준·남은(南誾) 등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되었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에게 참수되었다. 저서에는 『삼봉집(三峰集)』, 『불씨잡변(佛氏雜辨)』등이 있다. 현재 탁본은 경기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탁본된 시기는 1980년대로 추정된다.
판독문/해석문
| 판독문 | 강세구 | ||
| 해석문 | 한민섭 |
참고문헌
| 단행본 | 2018 | 『비석에 새긴 봉화인의 삶』 |
| 단행본 | 2001 | 평택문화원, 2001, 『역주 평택의 금석문』1, 평택문화원 |
| 단행본 | 1990 | 경기도, 1990, 『경기금석대관』4, 경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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