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광사 석가불사리탑중수비(法廣寺 釋迦佛舍利塔重修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750년(영조 26)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전체높이 183.0 비신높이 121.0 너비 상 51.0 하 48.0 두께 16.5
-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상읍리 967 법광사
- 출토지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토성리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신유한(申維翰)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법광사의 석가불사리탑을 중수하게 된 경위를 밝힌 비문이다. 법광사는 경주 북쪽 비학산에 있으며 신라시대 불국사 등과 함께 큰 절로 유명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대웅전과 금당, 5층 석탑만 남아있었다. 명옥(明玉)과 효헌(曉軒) 등의 승려가 탑이 무너져 새로 세우려고 철거하자 그 안에서 석가불사리가 나왔다. 사람들이 놀라서 대웅전으로 옮겨 봉안하자 5일 동안 서광이 서려있었다. 1747년 탑을 다시 만들고 탑 앞에 법당을 세운 뒤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는 편액을 걸고 다시 그 아래 향로전을 세웠다. 원래 이 절은 진평왕의 원당(願堂)으로서 원효와 의상이 머물었던 흔적이 있다. 진흥왕 10년에 양무제가 신라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보내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맞았으며, 진흥왕의 손자인 진평왕은 원효대사에게 법광사를 창건하고 사리를 봉안할 탑을 세우게 하여 자신의 원당으로 삼았다. 다만 문헌이 명확하지 않고 탑 안에서 얻은 글씨도 알아볼 수 없으며, 또 사사롭게 사용하던 연호를 사용하여 고증할 수는 없다. 사리라는 물질에 얽매여 진리를 더럽히지 말고 마음을 닦으라고 경계한 명문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현재 탁본은 성균관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탁본된 연대는 1970년대로 추정된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이기영 | ||
| 판독문 | 국중웅 |
- 담당부서 : 미술문화유산연구실
- 문의 : 042-860-91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