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형묘갈(鄭文烔墓碣)
- 시대
- 조선
- 연대
- 1501년(연산군 7)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높이 150.0 너비 56.0 두께 19.0
- 소재지
-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 산23-1
- 출토지
-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 산23-1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홍귀달(洪貴達)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1501년(연산군 7)에 과천시 문원동에 건립된 정문형(鄭文炯)의 묘갈이다. 비문의 찬자는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이고 서자는 미상이다.정문형(1427~1501)은 본관은 봉화(奉化)로 조선왕조의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의 증손이다. 1447년(세종 29)에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음주가무한 죄로 장형(杖刑)을 받기도 하였다. 1455년(세조 원년) 교리로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1467년(세조 12) 성절사(聖節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왔고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때 김종직(金宗直)을 대역죄인으로 처단하고 부관참시 할 것을 주장하였다.비문에는 정문형의 선조내력과 그의 관력이 정연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아울러 후손의 번창하고 현달하였음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비문에는 정문형이 세종이후 연산군에 이르는 6세(世) 동안 관직생활을 하면서 공사(公事)를 성실하게 처리하였음을 치하하고 있다. 그러나 정문형이 조선왕조 초기 정치적 변동기에 훈구사족으로서 관계진출과 관직생활, 사림진출과정에서의 정치적 알력 등을 체험한 인물임에서 보면 비문의 내용은 매우 소략한 감이 있다.
관련 금석문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김남일 | ||
| 판독문 | 김남일 |
참고문헌
| 논문 | 2004 | 김용흠, 2004,「조선전기 훈구 사림의 갈등과 그 정치사상적 함의」,『동방학지』 124 |
| 논문 | 2003 | 陳商元, 2003,「조선전기 정치사건의 처벌과 伸寃」,『역사학보』180 |
| 논문 | 1995 | 崔楨鏞, 1995,「世祖朝 原從功臣의 책정과정과 성격」, 『昌原史學』, 2 |
| 논문 | 1993 | 「연산군대의 군ㆍ신 권력관계와 그 추이」 |
| 논문 | 1991 | 李秉烋, 1991,「朝鮮前期 支配勢力의 葛藤과 士林政治의 成立」 『民族文化論叢』11. 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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