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흔묘갈(朴昕墓碣)
- 시대
- 조선
- 연대
- 1484년(성종 15)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전체높이 194.0cm,비신높이 155.0cm, 너비 68.0cm, 두께 19.0cm
-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1383
- 출토지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1383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채수(蔡壽) / 미상 / 안침(安琛)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1484년(성종 15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京畿道 高陽市 一山東區 城石洞)에 자리한 박흔 묘소에 있는 박흔의 묘갈이다. 이 비는 당시 사헌부(司憲府) 대사헌(大司憲)이었던 채수(蔡壽)가 글을 짓고 승정원(承政院) 우승지(右承旨) 안침(安琛)이 글씨를 쓴 것으로 비문은 채수의 문집인 『나재집(懶齋集)』에도 기록되어 있다. 박흔(1403~1442년)은 1429년(세종11년)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였고, 음직(蔭職)으로 감찰(監察)을 지냈다고 한다. 비문에는 그의 아버지 박순(朴淳)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는데, 태종조에 태조가 함경도에 있을 때, 박순이 운검(雲劒)으로 자청하여 함경도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자, 부음을 들은 부인 임씨는 자결을 하였다. 태종이 이를 애도하여 박순의 고향에 충신과 열녀의 정문(旌門)을 세웠고, 아들 박흔에게는 벼슬을 증직(贈職)하고 노비와 전답을 하사하였다는 내용이다. 박흔은 연안부사(延安府使) 전경(全卿)의 딸과 결혼하여 4남 4녀를 두었는데, 40세로 일찍 생을 마쳤고, 부인 전씨를 1484년(성종 15년)에 합장하면서 비를 세웠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이기영 | ||
| 판독문 | 이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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