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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사 석탑금동사리함(皇福寺 石塔金銅舍利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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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이 명문은 706년(성덕왕(聖德王) 5)에 조성되었다. 1942년 경주시 구황동 황복사지 석탑을 해체 복원할 때 탑의 2층 탑신 윗면에 있는 방형 사리공(舍利孔)에서 금제불상 2구, 사리, 구슬, 금은제 고배 등이 출토될 때 함께 발견된 사리함에 새겨진 명문이다.
황복사지 석탑은 신문왕의 사후에 신문왕비와 효소왕이 건립한 것인데, 그 후 성덕왕이 돌아간 신문왕과 신문왕비와 효소왕을 위해 사리와 불상 다라니를 탑 속에 봉안하고 이 자료를 새겨 남겼다.
사리함은 안쪽에서부터 유리병-금합-은합-금동외함의 순서로 이루어졌는데, 이 명문은 금동외함의 뚜껑에 새긴 것이다. 명문은 사방으로 칸을 그어 칸마다 한 자씩 새긴 것으로 전체 18행에 1행 20자로 쓴 해서체로 자경은 1cm이다. 그리고 금동외함의 네 면에는 소탑 99기를 점선묘로 그렸다. 황복사지 석탑은 경주시 구황동 현지에 있으며, 사리함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명문의 찬자와 서자는 미상이다.
명문 내용은 신문왕의 승하 사실, 신문왕비와 효소왕의 삼층석탑 건립, 신문왕비인 신목왕후와 효소왕이 차례로 승하, 성덕왕이 석탑에 사리 등을 봉안한 사실, 그리고 불사 기원문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맨 마지막에 사주(寺主) 이하 조성 담당자가 적혀 있다.
이 명문 자료는 702년에 한역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곧바로 신라에 유입되어 그 내용을 기본으로 706년에 사리신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 명문에 밝힌 조성 경위와 조성에 참여한 인물들을 통해 성덕왕의 즉위와 관련하여 신문왕-효소왕-성덕왕대의 정치 세력의 변화를 추적하는 데 유익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대저 성인은 가만히 있으면서 혼탁한 세상에서 백성을 기르고 지극한 덕은 억지로 하지 않으면서 이 세상에서 중생을 제도한다. 신문대왕(神文大王)이 오계(五戒)로 세상에 응하고 십선(十善)으로 백성을 다스려 통치를 안정하고 공(功)을 이루고는 천수(天授) 3년(692) 임진년 7월 2일에 돌아갔다. 신목태후(神睦太后)와 효조대왕(孝照大王)이 받들어 종묘(宗廟)의 신성한 영령(英靈)을 위해 선원가람(禪院伽藍)에 삼층석탑을 세웠다.
성력(聖曆) 3년(700) 경자년 6월 1일에 신목태후(神睦太后)가 마침내 세상을 떠나 높이 극락에 오르고 대족(大足) 2년(702) 임인년 7월 27일에는 효조대왕(孝照大王)도 승하하였다.
신룡(神龍) 2년(706) 경오년 5월 30일에 지금의 대왕이 부처 사리 4과와 6치 크기의 순금제 미타상 1구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권을 석탑의 둘째층에 안치하였다.
이 복전(福田)으로 위로는 신문대왕(神文大王)과 신목태후(神睦太后) 효조대왕(孝照大王)의 대대 성묘(聖廟)가 열반산을 베고 보리수에 앉는데 보탬이 되기를 빈다. 지금의 융기대왕(隆基大王)은 수명이 강산(江山)과 같이 오래고 지위는 알천(閼川)과 같이 크며 천명의 자손이 구족하고 칠보의 상서로움이 나타나기를 빈다. 왕후는 몸이 달의 정령과 같고 수명이 겁수(劫數)와 같기를 빈다. 내외 친속들은 옥나무처럼 장대하고 보물 가지처럼 무성하게 열매맺기를 빈다. 또한 범왕(梵王) 제석(帝釋) 사천왕(四天王)은 위덕(威德)이 더욱 밝아지고 기력(氣力)이 자재로와져 천하가 태평하고 항상 법륜을 굴려 삼도(三塗)의 중생이 어려움을 벗어나고 육도(六道) 중생이 즐거움을 받으며 법계(法界)의 중생들이 모두 불도(佛道)를 이루기를 빈다.
사주(寺主)는 사문 선륜(善倫)이다.
소판 김순원(金順元)과 김흥종(金興宗)이 특별히 왕명을 받든다.
승 영휴(令携), 승 영태(令太), 대나마 아모(阿摸), 대사 계력(季歷).
탑전(塔典)은 승 혜안(惠岸), 승 심상(心尙), 승 원각(元覺), 승 현방(玄昉), 대사 일인(一仁), 대사 전극(全極), 사지 조양(朝陽), 사지 순절(純節)이다.
만든 이는 계생(季生)과 알온(閼溫)이다.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1992)]
垂拱 : 팔장을 끼고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있음. 덕(德)으로 정치가 잘 이루어짐을 말함. ↩
염부(閻浮)는 염부제(閻浮提). jambu-dvipa의 음역. 섬부주(贍部洲)라고도 함. 수미산(須彌山) 사주(四洲)의 하나로 남쪽에 있으며 염부나무가 무성하다 함. 원래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는데 후에 인간세계를 뜻하게 되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일컫게 됨. ↩
신문왕의 둘째 왕비. 첫째 왕비인 소판(蘇判) 김흠돌(金欽突)의 여(女)가 부친의 난(亂)에 연좌되어 출궁(出宮)된 후 신문왕 3년에 왕비가 됨. 일길찬(一吉飡) 김흠운(金欽運)의 여(女). 효소왕의 모(母). 『삼국사기』에는 성덕왕도 이 소생으로 둘째 왕자라 하였으나, 성덕왕은 신문왕의 첫째 왕비인 김흠돌(金欽突) 여(女)의 소생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함(辛鍾遠). ↩
신라 제32대왕. 재위 692~702년. 신문왕 태자로 신목왕후의 소생.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효소왕(孝昭王)으로 나옴. ↩
‘庿’자는 ‘廟’와 같은 자. 종래 ‘厝’자로 읽어왔으나 글자의 형태와 의미상 ‘庿’자가 타당함. ↩
금지(金枝) 옥엽(玉葉) 등은 제왕의 자손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는 왕족에 대한 미칭(美稱)으로 쓰임. ↩
범(梵)은 범천(梵天), 석(釋)은 제석천(帝釋天), 사왕(四王)은 사천왕(四天王)으로 모두 하늘에 있는 불교의 수호신. 범천은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주인으로 수미산(須彌山) 상봉의 도리천(忉利天 : 욕계(欲界) 6천의 제2천. 33천이라고도 함)의 주인인 제석천과 함께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중생을 보호함. 사천왕은 욕계 6천의 제1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주인으로 지국천(持國天) 증장천(增長天) 광목천(廣目天) 다문천(多聞天)이 각기 동서남북을 맡아 제석천의 명을 받들어 인간세를 살핌. ↩
중생이 업인(業因)에 따라 나는 육도(六道) 중의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삼악도(三惡道). ↩
육도(六道)라고도 함. 미혹한 중생이 업인(業因)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의 여섯 가지로 난다 함. ↩
의식의 대상인 모든 사물. 유위(有爲) 무위(無爲)의 만유(萬有) 제법(諸法)을 말하기도 함. ↩
사주(寺主)는 국통(國統)으로 신라 승관의 최고 책임자.
『삼국사기』 권40 직관하(職官下) 정관(政官)에 ‘國統〔一云 寺主〕’이라 하였음.「황룡사찰주본기(皇龍寺刹柱本記)」에서 혜흥(惠興)이 본문에는 사주(寺主)로 나오고 후반부 성전(成典)에는 전국통(前國統)으로 나와 『삼국사기』 기록과 부합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