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문묘비(金仁問墓碑)
- 시대
- 통일신라
- 연대
- 701년(효소왕 10) 추정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폭 4자, 높이 6자 추정, 현재 길이 75.8cm, 넓이 100cm 정도, 두께 18cm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 출토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리 서악서원 누문하(樓門下)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김인문묘비는 1931년 12월 일본인 학자가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의 누문(樓門) 아래에서 발견하였다. 묘비는 발견될 당시 이미 깨어진 상태였고, 남아있는 비편은 높이 75.8cm, 너비 1m 정도, 두께 18cm로 비의 아랫부분에 해당한다. 현재 묘비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김인문(金仁問)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둘째 아들로 고구려정복에 큰 공을 세웠으며 통일 후에 중국 당나라에 머물다가 694년(효소왕(孝昭王) 3)에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이듬해에 유해가 신라에 송환되어 현재의 경주시 서악동에 무덤을 만들고 장례를 치렀다. 묘비는 이 무렵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는 비편의 내용은 김인문(金仁問)의 시조와 선조들의 행적, 김인문(金仁問)의 행적을 기술한 것으로 구성되었다. 이 부분은 『삼국사기』 김인문열전에 전하는 내용과 일치하거나 보완적인 성격을 지닌다. 아마도 나머지 부분에는 김인문(金仁問)의 죽음과 장례, 비의 건립에 관한 사실, 비명(碑銘)을 기술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최광식 | ||
| 판독문 | 최광식 | ||
| 판독문 | 황수영 | ||
| 판독문 | 이난영 | ||
| 판독문 | 末松保和 | ||
| 판독문 | 藤田亮策 | ||
| 판독문 | 허흥식 |
참고문헌
| 단행본 | 2002 | 『한국고대금석문종합색인』 |
| 단행본 | 1995 | 國史編纂委員會, 1995, 『韓國古代金石文資料集』Ⅱ, 國史編纂委員會 |
| 단행본 | 1992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編, 1992,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Ⅱ,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 단행본 | 1976 | 黃壽永, 1976, 『韓國金石遺文』, 一志社 ; 1994, 復刊 ; 1999, 『金石遺文 黃壽永全集4』, 혜안 |
| 단행본 | 1968 | 『韓國金石文追補』, 中央大出版部 |
| 논문 | 1954 | 末松保和, 1954, 「近時發見の新羅金石文」『新羅史の諸問題』 |
| 논문 | 1932 | 藤田亮策, 1932, 「新羅金仁問墓碑に就いて」『京城帝大史學會會報』1(2) |
| 논문 | 1932 | 藤田亮策, 1932, 「新羅金仁問墓碑の發見」『靑丘學叢』7, 靑丘學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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