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태종무열왕릉비(慶州 太宗武烈王陵碑)
- 시대
- 통일신라
- 연대
- 661년(문무왕 1)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전액 높이 110cm, 너비 145.4cm, 두께 33.3cm, 비편 약 가로 8cm, 세로 8cm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844-1
- 출토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844-1
- 서체
- 전액 전서(篆書), 비편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김인문(金仁問) / 미상 / 김인문(金仁問)
- 지정사항
- 국보
- 연구정보
개관
태종무열왕릉비의 비편은 1935년 4월 2일 경주 무열왕릉(武烈王陵) 앞에서 최남주(崔南柱)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약 8×8cm의 크기이다. 비문은 사방 약 3.3cm씩의 방격을 그리고 그 안에 글자를 새겼는데, 현재 남아 있는 조각에서는 8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 중 두 칸이 완벽하게 남아 ‘中禮’라는 글자가 확인된다. 나머지는 한두 개의 획이 보일 뿐이다. 서체는 해서(楷書)이며, 글자의 크기는 각각 1.7×2cm, 2×2.5cm 정도이다. 660년 이후 문무왕대(文武王代)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이 비편이 발견되기에 앞서 무열왕릉의 서북편인 경주시 서악동에서 무열왕릉비의 귀부(龜部)와 이수(螭首)(국보)가 발견되었는데, 비신(碑身)은 없어진 상태였다. 화강암으로 된 귀부는 머리를 앞으로 불쑥 내밀고 있는 거북이 모양으로 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있다. 귀부의 상부에 낮게 돌출된 비좌(碑座)와 양귀를 둥그렇게 마름한 이수가 놓여 있다. 이수는 가운데의 전액을 중심으로 거꾸로 작립한 반룡이 조각되어 있는데, 높이 110cm, 너비 145.4cm, 두께 33.3cm이다. 전액은 세로 48.4cm, 가로 33.3cm이다. 글자는 전서(篆書)로 양각되어 있으며, 지름은 약 9.1cm이다. 이 비는 김인문(金仁問)이 찬서(撰書)했다고 전하며, 비액은 오래전부터 발견된 듯, 『대동금석서목(大東金石書目)』에도 보인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김정숙 | ||
| 판독문 | 허흥식 | ||
| 판독문 | 김정숙 | ||
| 판독문 | 柳喜海 | ||
| 판독문 | 葛城末治 | ||
| 판독문 | 朝鮮金石總覽 | ||
| 판독문 | 齋藤忠 | ||
| 판독문 | 황수영 |
참고문헌
| 단행본 | 『朝鮮金石總覽』上 | |
| 단행본 | 2002 | 『한국고대금석문종합색인』 |
| 단행본 | 1995 | 國史編纂委員會, 1995, 『韓國古代金石文資料集』Ⅱ, 國史編纂委員會 |
| 단행본 | 1992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編, 1992,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Ⅱ,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 단행본 | 1983 | 趙東元. 1983, 『韓國金石文大系』3, 원광대학교 출판부 |
| 단행본 | 1981 | 吳慶錫, 1981, 『三韓金石錄(外)』, 亞細亞文化社 |
| 논문 | 1981 | 李重華, 1981, 「武烈王碑의 碑文에 對하여」『民族文化論叢』9·10, 民族文化社 |
| 단행본 | 1976 | 黃壽永, 1976, 『韓國金石遺文』, 一志社 ; 1994, 復刊 ; 1999, 『金石遺文 黃壽永全集4』, 혜안 |
| 논문 | 1931 | 大坂金太郞, 1931, 「新羅武烈王陵碑に就いて」『朝鮮』198, 朝鮮總督府 |
| 논문 | 1928 | 李重華, 1928, 「武烈王碑의 碑身에 對하여」『한빛』3,4·5합병호, 한빛사 ; 1943, 『반도사화와 낙토만주』, 만선학해사 ; 1971, 『韓國學硏究叢書』1, 성진문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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