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신신도비(黃守身神道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469년(예종 1)/ 1943년 재건립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전체높이 216.0cm, 비신높이 154.0cm, 너비 55.0cm, 두께 28.0cm
-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산3-2
- 출토지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산1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이승소(李承召) / 미상 / 이승소(李承召)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1469년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산1에 황수신(黃守身, 1407∼1467년)의 사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이다. 찬자와 서자 및 전액 모두를 이승소(李承召)가 썼다. 자는 계효(季孝) 호는 나부(懦夫)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냈고, 훗날 순충보조공신 남원부원군(純忠輔祚功臣南原府院君)에 증직된 희(喜)이다. 어머니는 청주 양씨(淸州楊氏)로서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진(震)의 딸이다. 1423년 사마시에 응시했다가, 시관(試官)에게 욕을 당하고는 학문에 진력하여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했다. 문음으로 종묘부승(宗廟副丞)·종부시직장·사헌부감찰·도관서영(歸官署令) 등을 역임했고, 이후 우부승지·좌부승지·좌승지를 거쳐, 1446년에는 도승지에 발탁되었다. 1457년에는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59년 충청도에 진휼사(賑恤使)로 파견되었다. 그 뒤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오르고 남원부원군(南原府院君)으로 봉해졌다. 부인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를 지낸 김준덕(金俊德)의 딸이며, 부인과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다. 신도비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황수신의 이력과 집안 내력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관련 금석문
판독문/해석문
| 판독문 | 유형구 | ||
| 해석문 | 박원자 | ||
| 판독문 | 박원자 |
참고문헌
| 단행본 | 2003 | 『대동운부군옥6-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16』 |
| 단행본 | 2001 | 박홍갑, 2001, 『양반나라 조선나라 - 조선의 양반문화, 관료문화』,가람기획 |
| 단행본 | 1970 | 田鳳德, 1970, 『經國大典解題』(韓國의 名著), 玄岩社 |
- 담당부서 : 미술문화유산연구실
- 문의 : 042-860-91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