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렬묘표(邊安烈墓表)
- 시대
- 조선
- 연대
- 1571년(선조 4)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전체높이 325.0cm, 비신높이 190.0cm, 너비 86.0cm, 두께 20.0cm
-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 704-1
- 출토지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박승임(朴承任) / 미상 / 송인(宋寅)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1571년 지금의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에 변안열(邊安烈, 1334∼1390년)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묘표이다. 박승임(朴承任)이 짓고 송인(宋寅)이 썼다.변안열의 자는 충가(忠可), 호는 대은(大隱)이다. 본래 중국 심양(瀋陽)사람인데, 원나라 말기 심양에 가 있던 공민왕을 따라 고려에 들어와 원주(原州)를 본관으로 받았다. 아버지는 성근익조공신벽상삼한삼중대광문하판삼사사(誠勤翊祚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門下判三司事) 양(諒)의 아들이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紅巾賊)을 소탕하여, 2등공신에 올랐다. 이어 이성계(李成桂)의 부장으로 운봉(雲峰) 인월(引月) 전투에서 왜적을 대파하는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1389년(창왕 1) 대호군 김저(金佇) 등이 이성계의 세력을 저지하고 우왕의 복위를 모의했던 일에 연루되어 사형되었다. 부인은 원주 원씨(원주원씨)로서 판추밀(判樞密) 원이(元頤)의 딸이며, 아들 셋을 두었다.한 때 변안열의 묘소를 잃어버렸다가 후대 변순(邊循)이 이를 다시 찾았다. 묘표를 통해 당시 고려말과 조선초의 정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이기영 | ||
| 판독문 | 이기영 |
참고문헌
| 단행본 | 2004 | 정화섭, 2004,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이야기』, 여름 |
| 단행본 | 1982 | 邊太燮, 1982, 『高麗史의 硏究』, 三英社 |
| 단행본 | 1977 | 申奭鎬, 1977, 『大隱實紀』, 韓一文化印刷社 |
| 논문 | 1968 | 黃浿江, 1968, 「大隱 邊安烈과 不屈歌」, 『단국대학교 논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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