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712년(숙종 38)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미상
- 소재지
- 미상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1712년(숙종 38)에 백두산에 세워진 조선과 청의 국경을 나타내는 경계비이다.백두산이 청조(淸朝) 발상의 영산(靈山)이라 하여 그 귀속을 주장하던 청은, 1712년 오라총관(烏喇摠管) 목극등(穆克登)을 보내어 국경문제를 해결하자는 연락을 해왔다. 조선에서는 참판(參判) 권상유(權尙游)를 접반사(接伴使)로 보내었으나, 청의 사절이 함경도로 입국함에 따라 다시 참판 박권(朴權)을 접반사로 출영(出迎)하게 하였다. 이때 조선측의 접반사는 산정에 오르지도 못하고 목극등 자신이 조선측의 접반사 군관(軍官) 이의복(李義復), 감사군관(監司軍官) 조태상(趙台相), 통관(通官)김응헌(金應瀗) 등만을 거느리고 산정에 올라가 거의 일방적으로 정계비를 세웠다. 그 뒤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철거하였다.
판독문/해석문
전체 2개
| 판독문 | 이우태 | ||
| 해석문 | 이우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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