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구기념비(申鉉求紀念碑)
- 시대
- 일제강점기
- 연대
- 미상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높이 123.0 너비 46.5 두께 17.0
- 소재지
-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동 163-48 왕산역사공원
- 출토지
- 미상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신현구(申鉉求,, 1886~1975)의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성당(誠堂), 일본식 이름은 사루교쿠[申鈺]이다. 1886년 9월 20일 경상북도 대구부 봉산정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 대한 제국탁지부(度支部) 세무 주사로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1908년 1월 1일 재무서 주사로 임명되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인 1910년 10월에는 경상북도 서기가 되면서 조선 총독부 소속 관료가 되었다. 1912년 9월 24일부터 1921년까지 평안북도 운산군수를 역임하였다. 1912년 정 8위를 거쳐 1915년 종 7위로 올랐다. 1914년에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가 주관하는 조선인 내지 시찰단에 뽑혀 일본을 다녀왔다. 1917년 10월 20일 평안북도 지방 토지 조사 위원회 임시 위원이 되었다. 1912년부터 1922년 5월 29일까지 경상북도 의성군수, 1922년 5월 30일부터 1926년 10월 14일까지 경상북도 상주군수, 1926년 10월 15일부터 1931년 12월 11일까지 경상북도 달성군수를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의성군수로 재직 중이던 1921년에 군수 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신현구는 달성군수로 재직 중이던 1931년에 현풍 향교를 중수한 후 기문(記文)을 작성하였다. 현재 「향교 중수기(鄕校重修記)」라는 제목으로 1990년 현풍 향교에서 필사본으로 간행한 『사적록(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신현구는 1912년 8월 1일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 병합 기념장을 받았다. 1915년 11월 3일 시정 5년 기념 조선 물산 공진회 수상자로 선정되어 포상을 받았다. 1915년 11월 10일 일본 정부로부터 다이쇼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1928년 4월 21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 5등 서보장, 1928년 11월 16일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한편 군민 체육관 옆 비석 공원에 있는 군수비에 신현구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군수 신공 현구 애민 선정비 1913년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는 신현구가 1925년 10월 15일부터 1931년 12월 11일까지 달성군수로 재직하였기 때문에, 추정컨대 1931년을 1913년으로 잘못 적은 듯하다. 서체는 중국 당나라 구양순(歐陽詢)의 해서체(楷書體)를 골격으로 하고 있어 단아하고 반듯하다. 비신 뒷면의 각자는 마모가 심해서 판독이 불가하다. 비신 오른면에 각자가 있었는데 지운 듯하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원종석 | ||
| 판독문 | 원종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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