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부사 김수근 추사타루비(安東府使 金洙根 追思墮淚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855년(철종 6)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비석 높이 144.0, 너비 55.0, 두께 29.5.0 개석 가로 110.0, 세로 80.0, 높이 50.0 대좌 가로 108.0, 세로 84.0, 높이 48.0
- 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산 42-8
- 출토지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1156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류기목(柳祈睦) / 미상 / 김진형(金鎭衡)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이 비석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입 상초리에 위치한 안동부사(安東府使) 김수근(金洙根, 1798~1854) 추사타루비(追思墮淚碑)이다. 타루비의 의미는 진나라 때 양양 사람들이 양호(羊祜)의 선정을 잊지 못해 그의 비만 보면 눈물을 흘렸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김수근의 자는 회부(晦夫), 호는 계산초로(溪山樵老), 시호는 정문(正文)이다. 1828년(순조 28)에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음사(蔭仕)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며, 이듬에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규장각대교를 역임한 뒤, 대사성, 이조참의, 충청도관찰사, 우참찬, 대사헌, 이조판서 등의 관직에 제수되었다. 김수근은 조선후기 삼정의 문란이 극심한 1839년에 안동부사에 부임되었다. 안동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삼정의 폐단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비문에 의하면 김수근은 삼정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전(前) 승지(承旨) 유치명(柳致明)을 향사당(鄕序堂)에 도임(道任)으로 나아가게 하고 유학(幼學) 권명하(權命夏), 유진홍(柳進鴻)과 생원(生員) 김대진(金袋鎭)과 진사(進士) 김동휴(金東休)를 도감(都監)으로 임명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 비는 김수근이 죽은 지 1년 후인 1855년(철종 6) 안동지역 36방 사람들이 힘을 모아 건립하였으며, 문경새재에 이 비를 건립하는 이유는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귀감이되길 바라며, 김수근도 이곳을 오가며 경관을 즐겼던 곳이라고 비문에 새겨져 있다. 현재 이 비는 6.25로 말미암아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머릿돌은 총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비신은 흰색 이물질이 묻어 있으며 앞뒷면과 측면 모두 훼손되어 새겨진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부분도 있다. 4개의 주춧돌이 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때 비각이 존재하였으나 6.25때 소실되었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문경의 금석문 1』 | ||
| 판독문 | 『문경의 금석문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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