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상(石床)

제1대 태조 건원릉의 석상

석상은 능(陵)·원(園)·묘(墓)의 봉분 앞에 놓이는 장방형의 석물로, 혼(魂)이 나와 머물며 노니는 돌이라는 의미에서 혼유석(魂遊石)으로 불리기도 한다.


석상은 봉분 아래에 위치한 석실의 남쪽 통로를 막고 설치하며, 단릉과 쌍릉, 합장릉, 삼연릉 등은 각각 재궁의 수에 맞춰 석상을 설치한다. 석상은 거대한 돌로 이루어지므로 무게를 지지하기 위해 바닥에는 지대석을 견고하게 설치하며, 지대석 위 네 귀퉁이에 족석(足石) 또는 고석(鼓石)으로 불리는 돌을 놓고, 그 위에 1매의 돌을 두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초기 왕릉의 석상은 네 귀퉁이와 중앙에 5개의 족석을 두었으나, 세종이 석상의 규모를 줄인 후 4개만 설치하게 되었다. 족석에는 일반적으로 벽사(辟邪)의 의미를 가진 나어두(羅魚頭)문과 연주문을 조각하였다. 석상의 크기는 태종대까지 길이가 11척이었다가 세종대 이후 9척 9촌으로 줄어들었고, 너비는 6척 3촌에서 6척 4촌으로, 두께는 1척 4촌으로 1척 5촌으로 늘어나는 변화를 보인다. 후대에는 크기가 신축적으로 변화하여 척수가 커지기도 했다.


조선왕릉과 같은 석상은 중국에서 보이지 않으며, 신라 왕릉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다. 민묘에서 석상은 제의(祭儀)때 제물을 진설하는 용도로 쓰이지만, 왕릉에서는 정자각에서 유교식 제향을 올리기 때문에 석상의 정확한 용도는 규명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석상의 거대한 규모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계속해서 배설했다는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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