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륜신도비(韓伯倫神道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474년(성종 5)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미상
- 소재지
- 인천광역시 서구 마전동 산120-4
- 출토지
- 인천광역시 서구 마전동 능안부락 산 120-4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김유(金紐) / 미상 / 장말동(張末同)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1474년(성종 5) 아들 한환(韓懽)에 의해 세워진 한백륜(韓伯倫)의 신도비이다. 찬자(撰者)는 김유(1420∼?), 서자(書者)는 장말동이다. 한백륜(1427∼1474)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자는 자후(子厚), 호는 의암(毅菴)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한창(韓昌)이며, 어머니는 이욱(李勗)의 딸이다. 예종의 계비(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가 그의 딸이다. 음보(蔭補)로 사온직장(司醞直長)이 되며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1468년(예종 즉위년) 10월 소훈이 왕후로 책봉됨에 따라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청천군(淸川君)에 봉하여지고, 같은 해 남이(南怡)의 옥사(獄事)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69년 오위도총부도총관을 역임하고, 품계가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랐다. 1470년(성종 1) 우의정에 승진하였고, 이듬해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이어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에 진봉되었다. 성품이 관후·검소하였으며, 경학(經學)에 밝았다. 시호는 양혜(襄惠)이다. 묘지명의 찬자인 김유는 먼저 한백륜의 혈통과 조상의 업적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뒤 그의 부모의 벼슬과 가족 관계를 간단히 밝혔다. 이어 강맹경의 생애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자세한 일화의 소개 없이 주로 관직의 역임과 간략한 업적을 정리해두었다. 이어 그의 너그럽고 온화한 성품을 언급하고 그의 임종과 사후 장례의 경위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부인과 자식 등 가족관계에 대해 정리하고 한백륜의 아들 한환이 자신에게 명문(銘文)을 부탁하여 지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명(銘)은 수명(壽命)에 인색한 하늘에 애석해하고, 명문을 지어 한백륜의 기록을 영원히 보존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판독문/해석문
| 판독문 | 최진욱 | ||
| 해석문 | 노효경 |
참고문헌
| 기타 | 2007 | (web) 인천광역시 서구청, 인천광역시 서구 문화유산 안내 |
| 단행본 | 2005 | 인하대학교 박물관·엠엔건설 공편, 『대곡지구 도시개발사업 : 문화유산 지표조사 보고서』, 인하대학교 박물관·엠엔건설, 2005 |
| 단행본 | 2004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仁川北部 綜合學術調査』, 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4 |
| 단행본 | 1994 | 『문평공 김길통묘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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