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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명(한글) 입암리유적
시대 청동기
성격 취락
유적설명(한글)

울산 입암리유적은 태화강변 충적지에서 청동기시대 마을과 함정유구 가 울산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유적이다. 유적은 태화강이 ‘U’ 자상 으로 곡류하는 충적지의 자연제방과 그 배후습지에 입지하고 있다. 유 적 내 토양층위는 현 경작층을 포함하여 크게 6개의 층으로 구분되는데, 그중 2층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수혈과 목책 유구, 4층에서는 청동기시대 함정유구와 주거지, 입석유구, 그리고 5층에서는 청동기시대 경작유구 가 확인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유구는 주로 자연제방 상에 밀집 분포한다. 성격을 정 확히 알 수 없는 수혈이 대부분인데, 그 중 단야공방지(67호)로 추정되 는 것이 1기 확인되었다. 구는 평면형태가 ‘ㄷ’ 자상인데, 2열(내구, 외 구)이 1조를 이루며, 내부에서 목책 흔적이 확인되었다. 구의 남북 길이는 1호가 44m이며, 연접되는 각 구의 길이는 1/2 정도로 줄어드는데, 계획적으로 구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꽃무늬막새편과 토기 등의 출 토유물로 보아 상한연대가 7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의 유구는 3개의 층에서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자연제방상 에 위치한다. Ⅳ-1층에서 확인된 함정유구 27기는 열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장축은 등고선에 직교하고, 열(列)은 등고선과 평행한다. 평면형 태는 장타원형이며, 단면형태는 완만한 ‘V’ 자형과 'Y ‘자형이 있다. 바 닥에는 소혈(창을 박았던 시설)이 2개씩 있다. 함정 사이의 간격은 1.3 ~6.2m, 함정의 규모는 장축 1.6 ~2.2m, 단축 1.0 ~1.4m, 깊이 1.2m 내외이다. 바닥의 소혈은 직경 10cm 내외, 깊이 10~30cm이다. 토층상에서 창이 박힌 채 부식된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창의 총길이 는 45~50cm 정도이다. 2호 주거지를 파괴하고 조성된 것으 로 볼 때, 주거지보다는 후대로 판단된다. 주거지는 평면형태가 방형과 장방형이며, 내부에서 노지의 주 혈이 확인되었다. 울산식 주거지의 대표적 특징인 벽구와 돌출 구(배수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주거지의 입지조건에 따라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입석유구는 높이 50~70cm, 너비 15cm 정도로 소형이다. 울산 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사되었는데, 그 용도와 성격이 마을 어귀 에 세웠던 입석과 유사한지는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Ⅳ-3층에서는 이랑과 고랑을 가진 밭유구가 극히 일부 지역 에서 확인되었다. Ⅴ-1층에서는 구에 의해 ‘ㅁ'자와 유사한 형 태로 구획된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밭유구로 보는 견해가 일반 적이다. 각 층에서 확인된 밭유구는 자연제방에서 배후습지로 연결되는 약간 경사진 곳에 위치한다. 유물은 주로 주거지에서 출토되었는데, 검단식토기인 낱알문 이 새겨진 파수가 붙은 항아리[把手附甕], 세로 방향의 선 무늬 가 새겨진 목긴항이라[長頸壺], 붉은간토기[紅陶], 반달모양돌칼[半月形石 刀], 홈자귀[有構石斧], 가락바퀴[紡錘車], 그물추[漁網錘]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로 볼 때 유적의 연대는 청동기시대 후기 전반에 해당된다. 이상과 같이 입암리유적에서는 울산 지역 처음으로 태화강변 충적지 에서 여러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특히 청동기시대 함정유구와 주거지는 입지에 따른 용도와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집필 : 김경화, 감수 : 이청규)

특징 청동기시대 대규모 함정유구
주요유적 함정, 주거지, 입석유구, 밭유구
유적요약설명 함정유구는 27기가 발굴되었고 주거지보다 후행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시대 함정유구와 주거지는 입지에 따른 용도와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조사기관 울산문화재연구원
집필자 김경호
사전명 2007 한국고고학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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