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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명(한글) 화성 수영리 유적
시대 청동기
성격 취락
시군구 경기도 화성
유적설명(한글)

화성 수영리 유적은 조선 시대부터 왕실의 소유지로,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이왕직李王職 목장이 있었던 곳이다. 해방 이후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시험 방목장 및 목초지로 활용했다.
지형적으로는 크게 북쪽에 위치한 칠보산七寶山에서 이어져 내려온 낮은 구릉 지대에 해당하며, 해발 약 65m 정도의 구릉지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 내린 가지 능선들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住居址 277기·구덩 유구 63기,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 2기, 원삼국~삼국 시대 집자리 22기·구덩이 8기·가마 2기·폐기장 1기·도랑 유구 4기, 통일 신라 시대 분묘 1기, 고려~조선 시대 집자리 6기·분묘 96기·탄요 1기·기타 유구 1기, 시대 미상의 도랑 유구 1기·구들 1기·분묘 2기 등 총 500여 기에 육박하며 조사 지역 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본 유적에서 확인된 다양한 유적 가운데 청동기 시대 관련 유구가 330여 기로 가장 많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들은 주로 구릉 정상부나 사면 상부에서 조사되었으며,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말각)방형 등으로 나뉜다.
평면이 (세)장방형인 집자리가 다수를 차지하며, 역삼동식 집자리로 분류된다. 이 밖에 (말각) 방형의 집자리들은 송국리식으로 분류된다. 역삼동식 집자리는 전기 중반에 등장하여 중기까지 지속되고, 송국리식 집자리는 청동기 시대 중기에 등장하여 후기까지 이어진다. 유적이 확인된 경기 남부의 경우 역삼동식과 송국리식이 점이 지대를 이루는 지역으로서, 두 유형의 문화권이 서로 혼합되어 발견되는 사례가 많다.
출토 유물로는 구순각목문口脣刻目文·공렬문孔列文·이중구연二重口緣·단사선문短斜線文 등이 복합된 토기 편과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환형파수호環形把手壺 등의 토기 편, 방추차紡錘車·어망추漁網錘 등의 토제품이 출토되었다.
이와 함께 반월형석도半月形石刀, 성형석부星形石斧, 석검石劍, 석창石槍, 석촉石鏃, 석부石斧, 석착石鑿, 지석砥石, 갈판耉石 등 다양한 용도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이밖에 대롱옥管玉도 확인되었다.
이번에 조사된 화성 수영리 유적은 경기도 남부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 가운데 최대 규모의 청동기 시대 취락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전 시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형태의 집자리가 발견됨으로써 한반도 중부 지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역삼동식 집자리와 송국리식 집자리가 확인되는 점이 지대에서 발견된 유적이라는 점에서, 각 문화상의 상호 교류에 대한 단서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징 경기 남부 최대 규모 청동기 취락
주요유적 주거지
유적요약설명 역삼동 유형과 송국리 유형의 점이 지대(중간 지대)에 위치하여 문화의 상호 교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조사기관 겨레문화유산연구원
집필자 문창희, 박상준
사전명 2020 한국고고학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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