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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명(한글) | 경주 도계리 유적 |
|---|---|
| 시대 | 청동기 |
| 성격 | 분묘 |
| 시군구 | 경상북도 경주 |
| 유적설명(한글) |
경주 도계리 지석묘군Ⅱ 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도계리 696-4번지일원으로 해발 685m의 오봉산五峰山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능선들 사이에 형성된 선상지扇狀地의 선정부扇頂部에 위치하고 있다. 경상북도에서 대규모의청동기시대 묘역지석묘墓域支石墓가 처음으로 조사되었으며, 유물로는 돌칼石劍,돌화살촉石鏃, 무문양無文樣의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조사된 묘역지석묘는 평면 형태에 따라 크게 (장)방형과 원형으로 구분된다.먼저 (장)방형계에 속하는 1호는 길이 11.2m, 너비 6.2m이며, 무덤의 둘레돌區劃石은 20~40cm 크기의 천석과 할석을 최대 3단까지 쌓았다. 내부에는 자갈이포함된 흙으로 채워 평탄하게 다졌으며, 상면에는 잔자갈을 한 벌 깔아 정지整地하였다. 그리고 동쪽 둘레돌을 따라 소형의 방형무덤 3기가 열상列狀으로 붙어있다. 크기는 길이 2.5~5.9m, 너비 2.4~3.6m이다.그리고 매장 시설은 소형무덤(1-1호) 내에서만 확인되는데, 움무덤土壙墓의형태로 내부에서 목탄과 인골이 함께 확인되며, 바닥면이 붉게 소결燒結된 것으로 볼 때 장법葬法은 화장火葬을 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호의 남쪽모서리에 덧붙어 돌널무덤石棺墓 1기를 배장陪葬하였다. 크기는 길이 80cm, 너비80cm, 깊이 9cm이며, 내부는 납작한 판석을 사용하여 바닥에 1매를 깔고, 네벽은 모두 세워서 축조하였다.10-1호는 평면 형태가 장방형으로 1호와 동일한 형태이다. 크기는 길이 11m, 너비 6.2m이다. 유구의 북쪽 둘레돌에 길이 6.84~7.46m,너비 3.9~5.7m 크기의 장방형무덤 2기(10-2·10-3호)가 열상으로 연접되어 있고, 다시 동쪽둘레돌에 직경 2~6.4m 가량되는 원형무덤 3기(12·12-2·12-3호)가 추가로 덧붙어 있다.매장 시설은 무덤구역墓域 내에서 원형 또는 타원형의 묘광을굴착하여 움무덤 형태로 조성하였다. 내부에서는 1호와 마찬가지로목탄과 인골이 확인되었다.13호는 장축 9.44m, 단축8.36m이며,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다. 둘레돌은 천석과 할석을 이용해 최대 3단까지 쌓았다.내부에는 흙과 자갈을 채워 평탄하게 다졌다. 그리고 가장자리를 따라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가진 소형무덤 13기가 마치연꽃 모양으로 잇대어 있다. 13호에 연접된 소형무덤에서는 움무덤 형태의 매장시설 2기가 확인되었다.유물은 묘역지석묘 7호 매장 주체부에서 일단병식석검一段柄式石劍 1점이 피장자被葬者의 허리춤에서 출토되었으며, 이와 함께 수습된 목탄 시료의 탄소연대측정결과는 대략 BC 750년의 값이 도출되었다.경주 도계리 유적의 묘역지석묘는 경상북도 지역에서 대규모로 조사된 청동기시대 후기의 묘역지석묘 유적이다. 유구는 현재 사업 부지 외역과 고속도로 하부로 연장되고 있으며, 본 유적과 인접한 ‘경주 도계리 중마을 유물산포지 유적’(2014년 조사)과 ‘경주 도계리 중마을 지석묘유적’(2015년 조사)의 발굴 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住居地와 묘역지석묘와 관련된 부석敷石 등의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따라서 본 유적을 포함한 일대는 청동기시대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지대가 낮은 곳은 주거공간으로 활용하였으며, 주거지 배후로 지대가 다소 높은 곳은 무덤을 조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유적은 그 성격에 따라 분리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묘역지석묘는 지석묘 조영 단계에서 늦은 시기에 발생된 무덤 형식으로 위치, 규모, 형태, 축조과정 등을 미루어 볼 때 권력의 발생 및 초기 국가 형성과관련하여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유적에서 확인된 다양한 형태의 묘역지석묘는 규모, 구조, 축조 방법, 장법등에서 볼 때, 경주 전촌리 유적, 김해 율하리 유적, 요동반도의 강상·누상 유적 등에서 조사된 유구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묘역의 규모와 축조 방법, 장법에 있어 독특한 특색을 띠고 있다.따라서 도계리 지석묘Ⅱ군 유적은 청동기시대 이후 집단의 형성 과정 및 묘제의 변천 등과 같은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며, 삼한 이전의 경주 지역 소국 형성과 관련한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
| 특징 | 경주 지역에서 최초의 대규모 묘역식 지석묘 유적 |
| 주요유적 | 묘역지석묘 |
| 유적요약설명 | 경주 도계리 유적의 묘역지석묘는 경상북도 지역에서 대규모로 조사된 청동기시대 후기의 묘역지석묘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지대가 다소 높은 곳은 무덤을 조성하고 지대가 낮은 곳은 주거공간으로 활용하였다. |
| 조사기관 | 삼한문화재연구원 |
| 집필자 | 윤형규 |
| 사전명 | 2015 한국고고학저널 |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176


